『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2021년 출간된 최은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입니다.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을 잇는 이 작품은 7편의 중·단편을 통해 인간의 상처, 관계의 틈, 소외와 연대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최은영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일상의 파편을 정교하게 포착하며, 여성, 약자, 상실자의 자리에 선 인물들을 조용히 비추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특히 이번 소설집은 삶의 어둠 속에서 작게 빛나는 감정의 흔적을 응시하며, ‘희미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관계의 온기’를 말하는 듯 합니다. 작품집의 제목처럼, 아주 미약한 빛조차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문학적으로 증명하는 작품이라 생각이 듭니다.
1. 줄거리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7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입니다. 이 가운데 대표작 3편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임시 교사」, 「그 여름」 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1.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표제작이자 소설집의 핵심 작품으로 주인공 해수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과거 친구였던 지은이 보낸 장문의 메일을 받고 오래된 기억을 회상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고등학생 시절 친구였지만, 해수는 지은을 둘러싼 사건에서 적극적으로 그녀를 돕지 못했고, 그 이후 연락이 끊겼습니다. 지은의 메일에는 과거의 상처, 그로 인한 삶의 고통, 그리고 해수의 침묵이 남긴 깊은 상흔이 담겨 있습니다. 해수는 메일을 통해 자신의 회피와 외면, 그리고 그로 인한 책임과 죄책감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침묵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침묵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무거운 상처가 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2. 「임시 교사」
주인공은 고등학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게 된 서영입니다. 서영은 학교에서 학생 지원을 만나고, 그 아이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지원은 가정폭력과 방임 속에 살아가는 소녀로, 서영은 처음에는 거리를 두려 했지만 점차 그녀를 돕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이라는 경계, 제도의 한계, 그리고 자기 보호 본능이 서영을 제자리로 되돌아가게 만들며, 결국 지원은 학교를 떠납게 됩니다. 서영은 자신의 무력함과 구조의 냉혹함 앞에서 좌절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남기게 됩니다.
3. 「그 여름」
이 이야기는 1990년대 후반, 두 여중생의 우정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주인공은 중학교 시절 친구였던 윤지와 미경. 두 사람은 여름방학 동안 자주 만나며 유대감을 쌓지만, 한 사건을 계기로 관계가 어긋납니다. 미경은 윤지를 무리의 따돌림으로부터 방관했으며, 윤지는 조용히 그 관계에서 멀어집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윤지는 미경의 소식을 우연히 듣고,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다시 떠올립니다. 이 작품은 소녀 시절의 권력 구조, 우정 속의 불균형, 그리고 그 기억이 어른이 된 후에도 어떻게 잔류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2. 등장인물
1. 해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화자.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여성으로, 과거 친구의 고통 앞에서 침묵했던 자신을 후회하며, 그 기억과 화해하려는 인물입니다.
2. 지은: 해수의 고등학교 친구.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이며, 해수의 외면으로 더욱 깊은 상처를 입고 오랜 시간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했습니다.
3. 서영: 「임시 교사」의 주인공. 계약직 교사로, 학생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자 하지만 제도와 불안정한 신분의 벽 앞에서 무력함을 경험하는 인물입니다.
4. 지원: 폭력 가정 출신의 고등학생. 서영에게 마음을 열지만, 결국 학교를 떠나게 되는 현실 속 피해자이자 생존자 입니다.
5. 윤지: 「그 여름」의 화자. 과거 미경과의 우정을 회상하며, 자신이 방관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하게 되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6. 미경: 윤지의 중학교 시절 친구. 왕따를 당했으며, 윤지에게 의지했지만 보호받지 못했던 기억을 간직하는 인물 입니다.
3. 배경
소설의 배경은 구체적인 지역보다 한국 사회의 일상적인 장소들인 도서관, 고등학교, 아파트 단지, 도시 외곽, 병원 등입니다. 이 장소들은 보통 사람들의 삶이 일어나는 곳이며, 특별할 것 없는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고통과 내면의 균열이 숨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최은영 작가의 작품은 주로 정적이고 침잠한 분위기를 띠며, 분노보다는 회한, 격정보다는 침묵, 말보다는 묵묵한 응시를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결국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며, 작고 평범한 삶 속에서도 서사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4. 도서평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는 문학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비추는 작은 불빛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작품 전체로 증명하는 소설 중 하나입니다. 최은영 작가는 이번에도 약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며, 동시에 그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의 무력감과 침묵 또한 정직하게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이 책의 강점은 이야기의 외형이 단조롭더라도, 인물들의 감정선이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섬세하게 포착되어 전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격렬한 서사나 큰 반전 없이도, 읽는 이의 가슴을 조용히 무너뜨리며 울컥하게 감정을 누르기도 합니다. 최은영 작가는 이 작품들을 통해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상처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존재지만, 아주 희미한 빛만으로도 서로를 비출 수 있습니다.” 이 소설작의 제목은 은유 그 자체입니다. 그 빛은 말 없는 위로일 수도, 과거의 기억을 마주할 용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작은 빛의 힘을 믿는 문학이라고 감히 표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