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겸 작가의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는 기발한 상상력과 사회 풍자를 조화롭게 녹여낸 SF 소설로, 출간과 동시에 SF 독자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제목만 보아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 작품은 단순한 외계인 침공 이야기를 넘어서, 인간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간성의 한계를 통찰력 있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외계인의 시선을 통해 인간을 조망하는 이 소설은 오히려 우리가 ‘지구에 적합한 존재인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기도 하는 작품입니다.
1. 줄거리 – ‘인류의 멸망’은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소설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는 외계 문명 ‘카르델리아’가 지구를 관찰한 끝에 인류를 멸종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지구의 자연 파괴, 기후 변화, 전쟁, 빈부 격차 등 스스로 자멸로 향해가는 인류의 행보를 위험하게 평가하기 시작하죠. 외계인의 사명은 단순한 침공이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선택권을 인간에게 주기로 결정하고, 인간 대표로 무작위로 선택된 지구인 ‘이정윤’을 납치해 대화를 시도하기로 합니다. 이정윤은 서울의 한 국립대 환경과학 석사 과정생으로, 인류가 처한 위기 상황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왔던 인물입니다. 외계인 엘마는 그에게 인류의 멸종을 막을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하며, 그가 전 세계를 설득하여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계획을 보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지구로 돌아온 이정윤은 UN을 비롯한 국제 기구, 국가 정부, 대기업 CEO들, 언론과 과학계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위기를 알리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무관심, 그리고 정치적 계산뿐이였습니다. 그 와중에도 외계인은 지구 곳곳에 작은 자연재해를 인위적으로 발생시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기상이변, 정체불명의 전자기파, 동물들의 이상행동 등은 모두 외계인의 기술력으로 인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음모론으로 치부하거나 과학적 설명에 몰두할 뿐 문제의 본질을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이정윤은 점점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심지어는 자신조차 인류가 변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며, 엘마에게 “차라리 멸종이 답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정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디아 정과 함께 인류의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 결말은 우리에게 큰 여운을 남기며, 과연 인간은 구원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 독자 스스로 판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2. 등장인물 – 인간과 외계인의 경계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은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정윤은 과학과 도덕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독자의 대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웅적이지 않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며, 그의 무기력함은 책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가 공감하기에 충분하다고 느껴집니다. 엘마는 외계 문명 ‘카르델리아’의 대표자로,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논리적 사고를 갖춘 존재입니다. 그는 인간에게 정당한 절차와 시간을 주지만, 동시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우주 생태계’라는 더 큰 윤리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해 나갑니다. 그는 냉정하지만 악의적이지 않으며, 인간의 불완전함에 실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를 느낍니다. 장 로렌츠는 UN 위기관리국의 책임자로, 정치적 수완은 뛰어나지만 외계인의 존재를 이용하려는 계산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현실 정치의 모순과 한계를 대표하며, 이정윤의 이상주의와는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또 다른 핵심 인물인 나디아 정은 이정윤의 대학 동문으로 환경 운동가입니다. 그녀는 인간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는 인물로, 엘마에게조차 설득력 있게 인간의 감성과 연대의 힘을 강조합니다. 그녀는 소설 속에서 ‘희망’의 메신저이며, 비관에 빠진 이정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군상들이 등장 합니다. 과학자, 언론인, 기업가, 정치가, 군인 등은 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외계인의 위협을 해석하고 행동합니다. 이들은 인간 사회의 복잡성과 이해관계를 반영하며, 독자로 하여금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3. 배경 -현실과 가까운 미래의 경계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의 세계관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기후 이상 현상이 일상화되며, 세계는 신냉전 체제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외계인의 개입이 시작되지요. 이러한 배경 설정은 현실과 매우 밀접하기 때문에,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한 허구로 치부되기는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소설 속 지구는 자연재해, 식량 부족, 난민 문제, 감시 사회화, 정보 과잉 등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기도 합니다. 외계인은 이를 ‘문명의 자기파괴 현상’으로 정의하며, “지능이 높을수록 자멸 확률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인간의 지능은 생태계와의 조화를 이루기보다 파괴와 소비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시각은 타당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외계 문명 ‘카르델리아’는 자연 중심의 삶을 추구하며, 불필요한 자원 낭비나 감정적 충돌을 지양해 나갑니다. 이들은 다른 문명을 침범하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지만, 지구만큼은 생태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커 예외로 간주됩니다. 엘마는 “인간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하며, 그 기준에 따라 개입을 정당화합니다. 세계관 설정은 매우 치밀하다고 생각됩니다. 인류가 쌓아온 문명, 기술, 정치 제도, 윤리 등이 외계 문명의 기준에서 얼마나 미성숙한지를 보여주는 대목도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인간 문명을 일방적으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 존재하는 ‘가능성의 불씨’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통해, 희망과 절망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해 나갑니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드러나는 인류의 선택은, 이 소설이 단지 경고만을 담은 작품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은 우리 독자들에게 강한 감동과 책임감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4. 도서평 – 경고와 성찰을 동시에 담은 이야기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는 외계인의 시선을 빌려 인간 사회를 객관적으로 비추는 탁월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대겸 작가는 단순한 SF적 상상력을 넘어서, 인간 문명이 지닌 모순과 한계를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환경 문제, 정치적 무능, 사회적 무관심, 윤리적 회피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지만 외면하는 문제들이 소설 곳곳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문체는 간결하고 대화체 중심이라 빠르게 읽히지만, 그 내용은 매우 묵직하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특히 엘마와 이정윤의 대화 장면은 마치 철학적 논쟁처럼 펼쳐지며,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는 자기 질문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지능이 높다는 것은 생존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외계인의 발언은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다가왔습니다. 작품의 또 다른 미덕은 ‘희망’의 실마리를 놓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나디아 정이라는 인물은 결국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연대의 힘과 변화를 위한 의지를 보여주며, 이정윤의 마지막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최후의 질문으로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는가?”라고. 이 소설은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환경, 윤리, 정치, 사회 전반에 걸친 통찰이 담겨 있으며, 독서 후 긴 여운을 남깁니다. 단순한 오락적 서사를 넘어, 한 권의 철학서처럼 우리에게 무언가의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는 내공이 큰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는 상상력과 메시지를 모두 갖춘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계인의 입을 빌려 인간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결코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독자가 책장을 덮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그런 강력한 힘을 가진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