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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키 아사코 『미안한데, 널 위한 게 아니야』:줄거리, 등장인물, 배경, 도서평

by redbull-1 님의 블로그 2025. 5. 19.

유즈키 아사코 작가의 '미안한데, 널 위한 게 아니야' 책표지.

 

『미안한데, 널 위한 게 아니야』는 일본 작가 유즈키 아사코가 발표한 장편소설 『らんたん(란탄)』의 한국어 번역 제목입니다. 유즈키 아사코는 『여자들의 등산일기』, 『버터』 등에서 여성의 욕망, 연대, 일과 삶의 균형을 유쾌하고 예리하게 그려낸 작가로, 이 작품에서도 역시 ‘여성의 선택과 자립’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놓고 독창적인 서사를 전개합니다. 『미안한데, 널 위한 게 아니야』는 20세기 초 일본의 실존 인물과 사회적 배경을 토대로, 두 여성의 경쟁, 협업, 성장, 해방을 다루는 소설로, 여성 서사의 깊이를 새롭게 확장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단순한 여성 성공담이 아니라, 여성 주체성의 다양성과 불완전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이야기를 펼쳐냅니다.

1. 줄거리

이야기는 20세기 초 일본, 메이지 시대 말기부터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 최초의 커피 전문점 ‘카페 블랑’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 두 여성, 아야메와 츠바사입니다. 아야메는 도쿄의 몰락한 상류층 가문 출신으로, 사교적이고 아름답지만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상류층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뒤에도 우아함과 기품을 잃지 않으며, 사회적 자립을 꾀합니다. 반면, 츠바사는 도쿄 외곽의 하층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똑똑하고 독립심이 강하지만 투박하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성격입니다.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 여성들만의 공간인 '카페 블랑(흰색 등불이라는 뜻의 상징적 공간)'을 함께 열게 됩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도 잦지만, 차츰 각자의 장점과 약점을 인정하면서 이질적인 여성 연대의 형태를 만들어갑니다. ‘카페 블랑’은 여성들이 서로를 견제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당시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여성 주체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갑니다. 그러나 성공의 그림자 속에서 두 사람은 다시 충돌하게 됩니다. 카페의 운영 방식, 고객 응대, 인생관까지 부딪히며, ‘함께’라는 말이 때때로 ‘억압’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함께 이뤄낸 성취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척한 자기만족’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소설은 이들의 협업과 결별, 재회 과정을 통해 ‘연대’가 꼭 아름답고 이상적일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갈등과 자율성의 존중 속에서 진짜 관계가 생긴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결말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되,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응원하는 독립된 삶을 선택합니다.

2. 등장인물

1. 이치노세 아야메 :우아하고 세련된 상류층 여성 출신.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내면에는 야망과 생존 본능이 강합니다. 여성의 자립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종종 타인에게 감정을 털어놓지 못하는 고립감을 겪습니다. '카페 블랑'의 공동 창업자.


2. 나카무라 츠바사: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실용적이고 직설적인 여성.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상류 사회에 대한 반감과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지녔으며, 아야메와의 협업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장해갑니다.


3. 마리코: 카페 블랑의 단골 손님으로, 중산층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 자신의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하며, 아야메와 츠바사의 삶을 보며 자신의 삶을 다시 고민하게 됩니다.


4. 아카이케: 당시 시대상에서 드물게 여성의 사회 진출을 지지하는 남성. 그러나 그 지지조차 때로는 여성에게는 간섭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모순적인 존재로, 여성과 남성의 협업 관계를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3. 배경

이 소설의 배경은 1920년대 초반 일본,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 문화가 빠르게 유입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서서히 허용되기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여성 교육, 참정권, 노동 문제 등 여러 변화가 시작되던 격변기였으며, 그 속에서 여성은 여전히 전통적인 가부장제와 서양식 자유주의 사이에서 존재의 균열을 경험하게 됩니다. ‘카페 블랑’이라는 공간은 그 모든 사회적 억압과 틈새 속에서 생겨난 여성들의 자율 공간입니다. 이 카페는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 다른 여성과 견주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성의 ‘목소리’와 ‘자기 결정권’의 상징이 됩니다.

4. 도서평

『미안한데, 널 위한 게 아니야』는 제목부터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입니다. 이는 곧 “내가 하는 선택은 당신을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라는 선언으로 읽혀지기도 합니다. 유즈키 아사코는 이 작품에서 여성의 연대라는 주제를 단순히 이상화하지 않고, 그 속에 내재한 갈등과 경쟁, 오해와 화해의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냅니다. 또한, 여성 서사의 클리셰를 피하려는 작가의 노력도 돋보입니다. 이 작품에는 ‘완벽한 우정’도, ‘이상적인 페미니즘 연대’도 없습니다. 대신, 여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실패하고, 상처받고, 성장하며,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성장 서사가 있는 소설입니다. 문장 또한 유즈키 특유의 가볍지만 날카로운 문체, 그리고 진지하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 어조로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특히 아야메와 츠바사의 시점이 교차하며 전개되는 구조는, 독자가 어느 한쪽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두 인물 모두에게 깊은 공감을 갖게 합니다. 『미안한데, 널 위한 게 아니야』는 그 어떤 위선도 없이, 여성이 여성을 이해하고, 때로는 밀어내고, 결국 서로를 응원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불완전한 연대”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단순히 여성 독자만이 아닌,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자율성과 존중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