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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영원한 천국』 – 줄거리, 등장인물, 배경, 도서평

by redbull-1 님의 블로그 2025. 5. 24.

정유정작가의 '영원한 천국' 책표지.

 

『영원한 천국』은 2023년 출간된 정유정 작가의 최신 장편소설로,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을 깊이 파고드는 정유정 특유의 스타일을 이어가면서도, 한층 더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기본으로 한 작품입니다. 『7년의 밤』, 『종의 기원』, 『완전한 행복』에 이은 ‘악과 선의 경계’, 도덕과 욕망, 개인의 자유와 시스템의 통제라는 주제를 새롭게 변주하며, 가상 종교 공동체 ‘천국마을’ 이라는 무대를 통해 현대 사회의 전체주의, 신앙의 기만성, 인간 본성의 본질을 조명합니다. 이 소설은 인간이 꿈꾸는 ‘천국’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하며, 현실로 구현된 천국이 오히려 지옥일 수 있음을 치밀한 플롯과 강력한 인물 구성으로 드러냅니다.

1.  줄거리

주인공 경하는 과거의 범죄로 인해 재사회화의 기회를 얻는다는 명목 아래 ‘천국마을’에 입주합니다. 천국마을은 철저한 격리와 감시 시스템 속에서 ‘새로운 삶’을 제공한다고 홍보되지만, 실상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감정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죠. 모든 주민은 철저하게 ‘목자’라 불리는 지도자의 통제를 받으며, 일상은 기도, 노동, 회개, 순응으로 짜여 있습니다. 외부와는 인터넷, 통신망, 언론까지 차단된 상태이며, 자신이 과거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조차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구조 속에 놓여 있게 됩니다.

경하는 처음엔 이 시스템에 순응하려고 노력하지만, 반복되는 회개 모임과 주민들의 비이성적 행동, 무엇보다도 마을 내에서 벌어지는 실종 사건을 겪으며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특히 정우라는 소년의 실종을 계기로, 그는 마을 곳곳을 은밀히 탐색하며 천국마을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하며 더 깊게 전개됩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나현은 같은 의심을 품고 있는 인물로, 둘은 은밀한 연대를 통해 진실에 다가갑니다. 이들은 천국마을이 실제로는 트라우마를 이용한 심리 조작, 감시와 처벌, 고립을 통해 인간을 길들이는 감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목자’는 마을 주민들에게 스스로를 ‘신의 대리인’으로 소개하지만, 사실은 주민들의 죄책감과 상처를 이용해 권위를 정당화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종교적 언어와 상징을 이용해 통제의 정당성을 부여하며, 비판적 사고를 무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유지해 갑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 순응하지 않는 자는 사라지거나 재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고문에 가까운 처벌을 받습니다. 경하와 나현은 이 모든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삶과 기억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들의 선택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스스로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한 윤리적 결단을 내립니다.

2. 등장인물

1.경하: 전직 사회복지사 출신으로 과거의 죄로 인해 ‘천국마을’에 입주합니다. 이성과 감정, 회한과 저항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마을 시스템의 허구를 인식하고 저항의 주체로 거듭나는 인물이죠. 작가는 경하를 통해 인간의 죄책감이 외부의 통제로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목자: 천국마을의 지도자이자 실질적인 절대 권력자. 겉보기에는 자애롭고 설득력 있는 연설을 하는 인물이지만, 내면은 조작과 폭력, 공포 정치로 공동체를 유지하는 독재자입니다. 그의 언행은 현대 사회에서 권위주의 지도자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압축적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3.나현: 경하와 마찬가지로 이방인 출신. 처음엔 무기력한 일상에 순응하는 듯 보였으나, 실상은 깊은 의심과 통찰을 품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녀의 내면적 갈등과 감정 변화는 ‘공동체 속 개인’이라는 주제를 입체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4.정우: 실종된 아이. 경하가 마을의 실체를 의심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합니다. 정우의 존재는 시스템에서 가장 취약한 존재, 즉 ‘아이’를 통해 전체주의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5.기타 주민들: 대부분은 순응하고 감정이 제거된 듯한 상태로 살아가며, 이들의 침묵과 무관심은 공동체의 억압을 더욱 강화된 인물들입니다. 일부는 자신도 모르게 권력의 도구가 되어 타인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역할을 합니다.

3. 배경

‘천국마을이라는 가상의 공간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폐쇄 공동체입니다. 숲속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금지당한 채 살아갑니다. 인터넷이나 전화, 미디어 등 외부 정보 접근은 금지되어 있고, 모든 활동은 ‘목자’의 승인과 지시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마을의 구조는 종교적 교리와 공동체주의, 감시 시스템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일상은 정해진 루틴에 따라 운영되며, 정기적인 회개 시간과 공동 의식, 복장 규율 등 세세한 통제가 이루어집니다. 이는 작가가 제시하는 현대적 전체주의의 축소판이며, 유토피아적 허위의식과 파시즘적 감시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현대 사회에서 점점 증가하는 감시 시스템, 정보 통제, 사회적 동조 압력과 닮아 있어 보입니다. 작가 정유정은 이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선’을 가장한 체계가 어떻게 ‘악’으로 변질되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주는 듯 합니다. 배경의 구조적 완성도는 높으며, 디테일한 공간 묘사와 리듬감 있는 전개가 몰입도를 높입니다.

4. 도서평

『영원한 천국』은 정유정의 작가 세계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작품입니다. 전작들이 한 개인의 내면 심리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했다면, 이번 작품은 공동체, 시스템, 이데올로기라는 보다 거시적인 틀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여전히 정유정 특유의 인물 심리 묘사는 섬세하고 미묘합니다. 경하의 혼란, 의심, 분노, 그리고 깨달음에 이르는 감정선은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전개됩니다.

이 소설은 여러 층위에서 독해가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입니다. 첫째로는 폐쇄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스릴러로, 둘째로는 종교와 권력의 관계를 풍자하는 사회 비판 소설로, 셋째로는 인간 존재의 존엄성과 자유 의지를 탐구하는 철학 소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문학성과 대중성, 사유성과 서사성을 모두 갖춘 균형 잡힌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유정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하는 듯 합니다. 진정한 구원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식과 타자에 대한 연민, 그리고 시스템에 대한 저항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이며, 그 죄를 속죄하고 회복할 수 있는 권리 또한 갖고 있음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듯 보여집니다.

『영원한 천국』은 정유정 문학의 진화되고 성장한 결과물이자, 한국 문학이 갈 수 있는 장르적·사상적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책을 접하는 우리 독자들에게는 깊은 몰입감과 함께, 문학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을 오랫동안 곱씹게 만드는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