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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고래눈이 내리다』:줄거리, 등장인물, 배경, 도서평

by redbull-1 님의 블로그 2025. 5. 20.

김보영 작가의 '고래눈이 내리다' 책표지.

 

『고래눈이 내리다』는 한국 SF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김보영의 대표 중편 중 하나로, 2004년 제1회 과학기술창작문예 중편 부문에서 수상하며 대중에 알려졌습니다. 이후 여러 SF 선집이나 작가 단행본에 수록되었으며, 2023년 재출간되며 다시 주목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시간, 기억, 죽음, 사랑, 생명이라는 복잡하고도 철학적인 주제를 과학적 상상력과 서정적인 감성으로 엮어낸 서사로, 김보영 특유의 '정서적 SF'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제목의 '고래눈'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소설의 핵심으로 하는 은유로서 시간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상징으로 기능을 하며, 이야기 전체를 감싸며 전개하는 미학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1.  줄거리

이야기는 먼 미래, 고도로 발달한 인류 문명이 생명을 조절하고 기억을 설계하는 기술을 손에 넣은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그러나 이 기술은 부작용과 큰 한계를 동반했고, 인류는 ‘기억과 존재의 윤리’라는 새로운 질문과 마주하게 되며 이야기는 전개 됩니다. 주인공 사일런스는 기억을 상실한 채 눈 내리는 행성에서 깨어납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른 채 정해진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녀의 곁에는 '엘'이라는 남성이 있으며, 그는 사일런스를 돌보고 기록하는 듯한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엘은 사일런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과거를 되짚고자 하지만 사일런스는 자신이 ‘사일런스’라는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점차 독자는 이 세계가 기억을 담는 저장소 같은 곳이며, 사일런스와 엘의 관계는 단순한 감정이 아닌, 잊힌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임을 알게 됩니다. 이 행성에는 '고래눈'이라는 눈이 내립니다. 일반적인 눈과 달리, 이 눈은 어떤 생명체의 기억이 녹아든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래눈이 내릴 때마다 사일런스는 익숙하지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이 반복된 실험의 대상이자, 기억을 지워가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엘 역시 완전한 인간은 아닙니다. 그는 사일런스를 복제 혹은 기억 복원 시스템의 일환으로 지켜보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점차 그 또한 인간적 감정을 얻게 되며 스스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이 기억과 존재의 경계에 놓인 존재임을 자각하고, 진짜 ‘존재한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소설은 마지막에 이르러 사일런스가 '기억'을 되찾는 대신, 스스로의 존재를 선택하는 자유를 가지며 끝이 나게 됩니다. 엘은 그런 그녀를 지켜보며, 사랑과 기억의 진짜 의미를 받아들이게 되죠. 고래눈은 다시금 내리고,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망각이 아닌 기억의 부활과 순환을 의미하며 이야기를 정리합니다.

2.  등장인물

1. 사일런스: 이야기의 중심 화자이자 기억을 잃은 여성. 반복되는 하루와 낯선 감정 속에서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해가는 존재. 그녀의 존재는 의식과 기억, 감정의 본질을 실험하는 중심축이 되며, 그녀의 깨달음은 우리에게 ‘기억이 존재의 전부일 수 있는가’를 묻게 합니다.


2. : 사일런스를 지켜보는 감시자이자 보호자. 초반에는 중립적이고 기능적인 존재로 보이지만, 점차 감정과 윤리적 딜레마를 겪으며 인간성을 획득해 갑니다. 그는 사일런스에게 기억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과 감정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존재입니다.


3. 이전의 사일런스들: 소설에서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사일런스는 단 한 명이 아니며, 수많은 기억과 실험의 반복 결과라는 설정이 암시됩니다. 이는 존재와 자아의 다중성, 그리고 기술 시대의 복제 인간/의식의 정체성 문제를 심화시키는 인물들입니다.

3.  배경

『고래눈이 내리다』의 배경은 구체적인 연도나 지역이 언급되지 않은 SF적 시간의 저 너머, 즉 인류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후 감정, 기억, 존재 자체를 조작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됩니다. 이 세계는 ‘기억 저장’과 ‘의식 복제’가 가능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기술이 인간성의 붕괴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딜레마 속에 놓여 있습니다. 행성의 자연은 눈이 내리는 극지 환경과 비슷하지만, 눈이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기억을 매개하는 매트릭스로 작용하게 됩니다. 특히 ‘고래눈’이라는 개념은 매우 상징적인데, 고래처럼 오래도록 깊은 기억을 품은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기억의 결정체’이자, 시간과 감정의 축적을 의미하는 세계관의 핵심적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4.  도서평

『고래눈이 내리다』는 단순한 SF 소설이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기억과 정체성, 감정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문학적 우화에 가깝습니다. 김보영 작가는 과학의 언어와 문학의 정서를 결합하여, 독자에게 인간 존재의 경계와 그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기억을 지운 채 반복되는 하루,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은 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 그리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결정을 내리는 로봇적 존재들. 이 모든 서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기억 없는 사랑은 가능한가, 존재는 감정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가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김보영 작가 특유의 정제된 문체와 시적인 표현, 그리고 독자를 정서적으로 흔드는 잔잔한 전개 방식은 SF 독자뿐 아니라 문학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줍니다. 그녀는 『고래눈이 내리다』를 통해 ‘기억의 복잡성’과 ‘존재의 애틋함’을 아름답게 그려내며, 기억을 잃어도 감정은 남는다는 진실을 말합니다. 이 소설은 읽고 나면, 이런 질문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됩니다. “내가 당신을 잊는다고 해서, 그 사랑이 사라지는 것일까?” “기억 없이도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고래눈이 내리다』는 과학적 사고와 시적 정서를 가장 정교하고 미묘하게 화합시킨 작품 중 하나이며, 한국 SF문학의 지평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이라 감히 생각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