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보라 작가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제목부터 묘한 기시감과 불안을 자아내는 작품입니다. 뱀과 양배추라는 이질적인 두 사물이 만들어내는 조합은 일상적인 풍경 안에 감춰진 초현실적 긴장감을 암시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가 아닌, 감정의 틈과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균열을 통해 독자에게 심리적 깊이와 사회적 질문을 동시에 던집니다. 현대인의 무감각한 일상, 사회적 억압, 그리고 감춰진 상처를 고요하면서도 강렬하게 조명하는 이 작품은 특히 여성의 시각에서 느끼는 세계를 정교하게 묘사하며 우리의 공감과 사유를 자극하는 작품입니다.
1. 줄거리 – 현실이라는 틀 속에서 스며드는 균열
주인공 지윤은 한때 소설가가 되길 꿈꿨던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며 고요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조용한 삶을 선택했지만, 그 안에는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와 인간관계의 피로감, 그리고 정체 모를 불안이 배어 있습니다.
어느 날, 학교 근처 텃밭에서 기묘한 조형물이 발견됩니다. 바로 뱀이 양배추를 감고 있는 형태의 조각상입니다. 이 조형물이 나타난 이후, 마을의 공기는 점차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장난으로 여겨졌던 이 조형물은 이후 은수라는 학생이 “밤마다 양배추밭에서 뱀이 말을 걸어요”라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조짐으로 변합니다. 지윤은 이를 그냥 넘기려 하지만, 은수가 예고 없이 실종되면서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지윤은 마을 어귀에 있는 폐가, 텃밭 근처의 수풀, 그리고 자신이 과거에 반복적으로 꾼 꿈들 속에서 등장하던 뱀과 양배추의 이미지들을 통해 이 모든 사건과 자신 사이의 심리적 연결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사건을 덮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지윤은 자신이 더 이상 침묵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현실에 침투하고, 은수의 실종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자신이 외면하고 있던 내면의 균열과 직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은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스케치북, 양배추밭 근처에서 발견된 사물들, 그리고 자신이 감추려 했던 기억들과 마주하며 마을을 떠날 결심을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지윤은 텃밭 앞에서 "이건 환상이 아니라, 내가 견뎌온 세계의 구조야."라고 말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붕괴된 세계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합니다.
2. 등장인물 – 말하지 않는 존재들 속에서 드러나는 진실
-.지윤은 이 작품의 중심 화자이자 관찰자입니다. 그녀는 겉으로는 조용하고 순응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녀는 상처 입은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그 상처를 직면하려는 용기를 지닌 인물입니다. 과거의 폭력적인 연인과의 관계, 작가로서의 꿈을 포기하게 된 과정, 그리고 타인과의 단절은 그녀가 자신만의 ‘내면 풍경’을 만들어내는 배경이 됩니다.
-.은수는 지윤의 제자이자, 작품의 주요 전환점이 되는 인물입니다. 은수는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감각을 지닌 소년으로, 다른 아이들과 달리 텃밭의 이상한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로 표현합니다. 그는 어른들이 외면한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며, 마치 집단 무의식이 투영된 존재처럼 기능합니다. 그의 실종은 단지 개별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가 감정을 외면하는 방식에 대한 상징적 경고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개별적인 이름보다 기능적 집단으로 표현됩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사소한 사건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과 회피는 점점 더 큰 균열을 불러일으키며, 결국 은수의 실종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집니다. 이들은 ‘안전한 현실’을 강박적으로 지키려는 대중의 무의식을 대변합니다.
3. 배경과 상징 – 양배추와 뱀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풍경
작품의 무대인 시골 마을은 외형적으로는 평화롭고 정적인 공간이지만, 그 이면에는 억눌린 감정과 부정된 진실이 숨어 있는 장소입니다. 특히 ‘양배추밭’은 복잡하게 감싸진 인간 내면을 상징하며, 각 층마다 감춰진 기억과 감정을 의미합니다. 양배추의 겉잎은 보기에는 평화롭고 둥글지만, 그 안에는 썩은 부분이나 칼자국 같은 흔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껍질을 덧씌우는지를 암시합니다.
‘뱀’은 고대부터 금기, 지혜, 위협, 생존 본능 등 다양한 상징을 품어온 존재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뱀은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감정, 잊으려 했던 기억, 그리고 무의식의 은유입니다. 뱀이 양배추를 감싸고 있는 조각상은, 억눌린 진실이 결국 개인의 삶을 감싸고 들어오는 방식, 곧 현실 그 자체로 침입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니라, 상징과 은유를 통해 내면 심리의 파편화를 묘사하는 장치입니다. 작가는 평범한 일상에 비일상적 요소를 침투시켜 독자에게 ‘진짜 현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삶과 감정, 사회 시스템에 대한 성찰을 유도합니다.
4. 도서평 – 불편함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문학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결코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서사가 뚜렷하지 않거나 해석이 열려 있는 장면들이 많아, 우리들에게는 꾸준한 몰입과 사고가 요구하고 있는듯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이 작품이 가진 문학적 깊이와 철학적 가치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됩니다. 강보라 작가는 인물의 심리를 과장 없이, 그러나 깊이 있게 그려내며, 묘사 하나하나에 상징을 배치해 우리의 해석을 유도해 내는것 같습니다.
특히 이 소설은 ‘불안’과 ‘침묵’을 다루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명확한 설명 없이 행동하거나 감정을 숨깁니다. 그 빈틈은 독자가 스스로 채워야 하며, 이 과정은 일종의 독서적 체험으로 확장됩니다. 또한 여성 인물의 내면 세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감으로써, 젠더 감수성과 사회적 억압에 대한 문제의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뱀과 양배추’는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 늘 존재하지만 말로 표현되지 못한 진실의 은유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기억, 억눌러온 감정, 말하지 못한 상처들이 바로 그 풍경 속에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 소설은 그런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마주하고, 응시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조용히 전달하고 있음을 깨닭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현실의 균열을 통해 인간의 복합적 감정과 사회의 집단 심리를 날카롭게 들여다본 작품입니다. 그 불편함 속에서 독자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고, 잊힌 진실과 감정의 파편을 하나씩 주워 담게 됩니다. 감정과 무의식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싶은 독자라면, 이 작품은 분명 기억에 오래 남을 경험이 될 작품이라고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