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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 :줄거리, 등장인물, 배경, 도서평

by redbull-1 님의 블로그 2025. 6. 2.

최진영 작가의 '해가 지는 곳으로' 책표지.

 

『해가 지는 곳으로』는 최진영 작가가 202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죽음을 넘어서는 우정과 회복의 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상실과 방황을 겪는 청춘이 길 위에서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결국 삶으로 다시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최진영 작가는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감각적인 서사로, 우리 독자에게 아픔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힘을 전하는 작품입니다.

1.  줄거리 – “죽은 친구가 보낸 마지막 편지”

소설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단이’와 그 친구 ‘유나’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단이는 세상을 등졌고, 유나는 그 상실 앞에서 죄책감과 허망함을 안고 살아갑니다. 유나는 단이가 남긴 유서 한 장과, 그가 남겨놓은 과거의 기록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유나에게 ‘길을 떠나자’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유나는 단이의 흔적을 따라 ‘해가 지는 곳’, 즉 제주도까지의 여정을 떠납니다. 단이와 함께 가자고 약속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던 그 길을, 이제 유나 혼자 걸어갑니다. 여행길에서 유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상처와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자신의 아픔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로드 트립이 아닙니다. 죽은 친구의 빈자리를 안고 떠나는 ‘내면의 순례’입니다. 유나는 여행 내내 단이에게 편지를 쓰듯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토로하며, 마침내 단이의 죽음을 직면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유나가 제주에 도착한 뒤, 자신이 진짜로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되찾으며 끝납니다. ‘해가 지는 곳’은 동시에 ‘해가 다시 뜨는 곳’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2.  등장인물 – “남겨진 자의 아픔과 성장”

『해가 지는 곳으로』는 두 인물, 유나와 단이, 그리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유나는 살아남은 자로서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는 인물입니다. 단이의 죽음에 스스로의 책임을 느끼고, 그와의 마지막 순간을 끊임없이 떠올립니다. 유나는 겉으로는 무덤덤한 척하지만 내면은 무너져 있는 상태로, 길 위에서 타인과 마주하고 새로운 풍경을 경험하면서 점차 스스로를 회복해갑니다. 그녀의 변화는 극적인 사건이 아닌, 아주 작은 ‘마음의 움직임’으로 그려지기에 더 현실적이고 울림이 있습니다.

단이는 이야기의 주체라기보다, 소설 전반을 감싸는 존재입니다. 그는 유나에게 편지를 남기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여전히 친구의 삶을 이끕니다. 단이는 고통을 오래 감추고 있었고, 주변의 작은 단서들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되묻는 하나의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인물들 또한 유나에게 영향을 줍니다. 상처 입은 청년, 방황하는 노인, 말없이 음식을 나눠주는 주점 사장까지. 이들은 모두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입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그리움과 후회를 간직한 이들이 유나의 여행길에 어우러지며,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이들의 삶을 통해 ‘공통된 슬픔과 회복의 가능성’을 체감하게 됩니다.

3.  배경과 메시지 – “여행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소설의 주요 배경은 서울에서 제주까지 이어지는 ‘여행길’입니다. 이 길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유나의 내면이 정화되는 과정과 연결됩니다. 작가는 여행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감정과 분위기를 중심으로 공간을 형상화합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 낯선 도시의 밤공기, 아무 말 없이 마주 앉은 사람의 눈빛은 유나의 고통을 비추는 거울이자 위로의 손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특히 제주도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과거 단이와 함께 꿈꾸던 ‘이상향’이자, 동시에 유나가 삶과 죽음을 모두 끌어안게 되는 마지막 도착지입니다. 그곳에서 유나는 비로소 단이의 부재를 인정하고, 떠나보낼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나의 상처가 모두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걸을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서 있습니다.

작품은 말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기억은 계속된다.” 또한 남겨진 우리는, 서로를 통해, 시간을 통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최진영은 비극적인 사건을 중심에 두되, 그것을 감정의 착취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깊고 조용하게 풀어냅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거라 생각됩니다.

4. 도서평 – “슬픔을 껴안고 걷는 삶”

『해가 지는 곳으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별’을 다루지만, 그 이별 이후의 ‘길’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삶은 늘 상실과 동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최진영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말합니다. “잃은 사람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일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그와 함께 살아갈 수는 있다”고.

아름답고 아픈 감정들이 조용히 흐르는 이 작품은 독자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실과 싸우고 있는 이들이라면, 『해가 지는 곳으로』는 그들에게 조용한 등불 같은 이야기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