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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와이 작가의 『동생』 :줄거리, 등장인물, 배경, 도서평

by redbull-1 님의 블로그 2025. 6. 7.

찬와이 작가의 '동생' 책표지.

 

찬와이 작가의 『동생』은 현실적인 심리 묘사와 미묘한 가족 역학을 절묘하게 엮어낸 작품입니다. 제목만 보면 단순히 형제 관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같지만, 실제로는 폭력, 침묵, 생존, 기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수작입니다. 작가는 가족이라는 친밀하고 안전해 보여야 할 공간 속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냅니다. 『동생』은 단순한 피해자-가해자의 이분법을 넘어서, 침묵 속에서 고통을 전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과 용서 불가능한 기억의 파편을 매우 치밀하게 그려냅니다. 이 소설은 특히 가정폭력과 트라우마의 대물림이라는 현실적인 주제를 개인 서사로 풀어낸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는 듯 합니다.

1. 줄거리 –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진실과의 마주침

『동생』의 화자인 '나'는 평범한 30대 남성으로, 결혼을 앞두고 인생의 안정기를 맞이한 인물입니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려 애쓰며 살고 있었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연락이 끊겼던 동생 준호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형, 나 좀 만나줄 수 있어?”라는 짧은 말 속에는 과거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화자는 망설이면서도 준호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어린 시절 고향집, 그리고 그 집 안의 ‘아버지’를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두 형제는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특히 동생 준호는 더 심한 학대를 받았고, 어머니조차 그 상황을 외면하거나 두려워한 채 침묵 속에 있었습니다. 화자는 늘 동생을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어린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시간이 흐르며 죄책감과 함께 준호와의 관계도 단절되었습니다.

재회 이후, 동생은 “왜 나를 구해주지 않았냐”고 묻고, 화자는 그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힙니다. 이 소설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과거의 사건을 하나씩 복기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뒤엉켜 있습니다. 형이었던 ‘나’는 침묵을 선택했고, 동생 준호는 도망을 택했으며, 어머니는 현실을 모른 체하거나 잊고자 했습니다.

결국 소설은 두 형제가 그 폭력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동생은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떠나고, 화자는 그 뒷모습을 보며 “그 아이는 죽지 않았지만, 살아 있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기억의 무게'를 응축하고 있습니다.

2. 등장인물 – 침묵의 역사와 응어리진 감정들

-.‘나’ (형)
이 소설의 화자이며, 동생과의 재회를 통해 잊고자 했던 과거를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내면에는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줄곧 자신을 합리화하며 살아왔고, 과거를 외면함으로써 살아남았지만, 결국 그것이 동생과의 단절을 낳았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준호 (동생)
아버지의 폭력에 가장 심하게 노출되었던 인물로,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폭력을 받으면서도 아무도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다는 깊은 배신감과 절망을 지녔습니다. 그의 삶은 형과 달리 불안정하며, 정서적 고립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는 말수도 적고, 감정을 드러내는 데 서툴지만, 형 앞에서는 차마 삼키지 못한 말을 쏟아냅니다. 그는 이 소설의 핵심 고통의 매개체이며, 동시에 ‘기억의 증인’입니다.

-.아버지
직접적인 서사에는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소설 전반에 걸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폭력의 상징이자, 이 가족의 모든 비극을 촉발시킨 원인이며, 동시에 침묵과 방관이 어떻게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주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어머니
폭력을 당하면서도 침묵하거나, 외면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두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방관자였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녀 역시 피해자일 수 있다는 암시를 넣어 복합적인 입장을 부여합니다. 어머니의 침묵은 여성의 억압된 위치와 생존 전략의 일면이기도 합니다.

3. 배경과 구조 분석 – 기억의 장소, 침묵의 시간

소설의 주된 배경은 현재의 도시 풍경과 과거의 고향집입니다. 특히 고향집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폭력의 무대이자 기억의 감옥으로 기능합니다. 형과 동생 모두 그 공간을 떠났지만, 마음속에는 그 집의 냄새, 분위기, 소리, 심지어 아버지의 발소리까지 남아 있습니다.

찬와이 작가는 이 소설에서 플래시백을 활용해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인물의 심리 변화와 트라우마의 지속성을 시각화합니다. 대화는 매우 짧고 건조하지만, 그 이면에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수많은 감정이 숨어 있으며, 침묵 자체가 하나의 언어처럼 작용합니다.

이 작품은 극적인 반전이나 클라이맥스보다는, 감정의 복원과 상처의 재확인이라는 서사 구조를 따릅니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어떤 ‘해결’도 제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용서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고통의 현실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4. 도서평 – “살아남았다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동생』은 찬와이 작가의 문체가 가진 냉정함과 절제미가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격렬한 사건 묘사 없이도, 고통의 강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작가가 공감에 의존하지 않고, 사실의 힘과 침묵의 무게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가정폭력의 기억이 단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삶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많은 작품들이 폭력을 고발하거나, 희망적인 결말로 나아가지만, 『동생』은 용서받지 못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의 현실을 철저히 비관적일 정도로 정직하게 묘사합니다.

찬와이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침묵은 죄가 될 수 있으며, 가족이라는 관계가 반드시 따뜻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동생』은 그런 의미에서 문학의 윤리적 기능을 성실히 수행한 작품으로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