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은 인간 관계 속에서 겪는 상처와 그로 인한 변화, 그리고 '기억과 진실, 용서'를 중심으로 한 감정의 복잡한 결을 섬세하게 풀어낸 최진영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2021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한 사람의 말이, 행동이, 존재가 누군가의 인생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며,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관계의 균열을 조명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1. 줄거리
주인공 정연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대학 시절 절친했던 친구 지유와의 사건 이후, 그녀의 삶은 뿌리째 흔들립니다. 지유와의 우정은 뜨겁고도 진실했지만, 하나의 사건, 그리고 그에 대한 진실의 왜곡과 침묵이 둘 사이를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지게 만듭니다. 결국 지유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정연은 그녀의 죽음 이후 깊은 죄책감과 혼란에 빠집니다. 소설은 지유의 죽음을 둘러싼 과거로부터 시작됩니다. 정연은 당시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해석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날의 사건을 둘러싼 진실의 조각들이 하나씩 드러납니다. 정연이 알지 못했던 지유의 고통, 감춰져 있던 제3자의 존재, 그리고 자신이 무심코 했던 말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시간이 흐른 현재, 정연은 지유의 어머니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으며 다시 그날의 기억과 마주합니다. 그 편지는 용서를 구하지도, 탓하지도 않지만, 정연의 죄의식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연은 과거를 직면하고, 자신이 끝내 외면했던 기억들을 하나씩 되짚어가며 지유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정연의 내면을 따라가고, 우리는 책을 접하는 동안 정연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점점 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감정에 함께 빠지게 됩니다. 정연은 결국 ‘단 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또 얼마나 무서운 힘을 지닐 수 있는지를 깊이 실감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친구일지, 자신일지, 혹은 세상일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습니다.
2. 등장인물
1. 정연 – 주인공. 친구의 죽음 이후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인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 과거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내면 깊은 곳에 상처와 죄책감을 지닌 인물이다. 겉으로는 평온한 삶을 이어가지만, 지유의 부재는 늘 그녀 곁에 있다.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갖기까지의 심리적 여정이 소설의 중심적 인물입니다.
2. 지유 – 정연의 대학 시절 친구로, 사건 이후 자살합니다. 이미 죽은 인물이지만 서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존재입니다.
정연의 대학 시절 친구. 섬세하고 감정의 결이 풍부한 인물로, 정연과는 때로는 사랑 같고 때로는 증오 같은 관계를 맺었다. 작품 속에서는 이미 죽은 인물이지만, 그녀의 기억과 진실은 소설 전반을 지배합니다.
3. 윤서 – 사건 당시 정연과 지유 사이에 있었던 인물로, 뒤늦게 정연이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정연과 지유 사이에 있었던 인물로, 당시 사건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정연이 과거를 되짚으며 윤서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몰랐던 진실이 드러난다. 다층적인 인물로, 피해자이자 방관자, 가해자의 모호한 경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4. 지유의 어머니 – 딸을 잃고도 정연에게 편지를 보내는 인물. 작품 내내 무거운 존재감으로 정연의 내면을 흔듭니다.
지유의 죽음 이후에도 딸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인물. 정연에게 편지를 보내며, 복잡한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존재는 정연이 사건을 외면하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3. 배경 및 서사 구조
『단 한 사람』의 배경은 특별하거나 색다르지 않습니다. 서울의 대학교 캠퍼스, 고시원, 자취방, 편의점, 정연이 일하는 서점 등은 누구나 살아봤을 법한 공간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평범한 일상 공간들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삶에 숨겨진 비극과 진실을 드러내지요. 또한,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사건의 본질에 점점 더 다가가는 구조를 취해 갑니다. 현재의 정연은 외형적으로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내면은 여전히 그 날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과거의 회상은 단지 설명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정연이 감당하지 못한 감정들이 다시금 해석되는 구조로 전개 되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정서적으로는 침묵과 여백이 많고, 그만큼 우리들의 내면을 건드리는 지점이 많습니다. 말보다 눈빛, 대사보다 행동의 공백, 장면의 정적이 이야기를 더욱 묵직하게 만들어냅니다.
4. 도서평
『단 한 사람』은 인간 관계의 복잡성과 작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을 얼마나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지를 철저히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 최진영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 ‘용서와 처벌’ 같은 이분법적인 시각을 정리하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회색지대의 인간 감정과 윤리를 탐색하게 합니다. 특히 주인공 정연의 내면 독백은 독자로 하여금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쉽게 비난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죄책감과 회피, 기억의 편집과 자기 합리화, 그리고 늦은 깨달음과 후회의 감정이 겹겹이 쌓이며 복잡한 심리전을 풀어가며 부드럽게 전개합니다. 최진영작가 특유의 문장은 단정하면서도 단호하지 않고, 감정을 크게 부풀리지 않으면서도 읽는 이의 가슴을 천천히 조여옵니다. 오히려 담담하게 서술될수록,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되는거 같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단 한 사람’이었을까?”, “내가 외면했던 누군가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나를 기억할까?” 『단 한 사람』은 그런 점에서 사적인 질문이자 보편적인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작품입니다. 이는 단순히 청춘의 상처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리, 책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문학적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최진영 작가의 문장은 단정하면서도 날카롭지 않고, 감정을 부풀리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단 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혹은 어떤 존재로 남고 싶은지를 되묻게됩니다. 사적인 감정이 보편적 진실로 확장되는 이 책은, 조용하지만 강한 힘을 가진 문학입니다. 그래서 조용하지만 강하게 이 책을 추천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