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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사키 유고의 『지뢰 글리코』: 줄거리, 등장인물, 배경, 도서평

by redbull-1 님의 블로그 2025. 6. 27.

아오사키 유고 작가의 '지뢰 글리코' 책표지.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차세대 대표주자, 아오사키 유고의 작품 『지뢰 글리코』는 범죄와 논리, 인간 내면을 동시에 파고드는 충격적인 단편입니다. 짧지만 강력한 반전과 섬세한 심리 묘사, 그리고 일본 고유의 게임 문화를 접목시킨 설정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거라 생각됩니다.

1.  줄거리 – 게임과 죽음, 그리고 아이들의 심리

『지뢰 글리코』는 ‘글리코 게임’이라는 어린이 간 전통 놀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단편 미스터리입니다. 이 게임은 “글리코, 파인, 초코렛”이라는 단어에 따라 전진할 수 있는 칸 수가 정해져 있는 단순한 말판 게임인데, 이 작품에서는 이 무해한 게임이 끔찍한 살인과 얽히면서 충격적인 전개를 만들어냅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어느 날 오후, 학교 뒷골목에서 펼쳐진 초등학생들 사이의 글리코 게임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놀이는 곧 ‘지뢰’라는 이름으로 변질되며, 패배자에게는 단순한 벌칙이 아닌 생명까지 위협받는 비극이 예고됩니다. 등장하는 어린이들은 단지 재미로 시작한 게임 속에서 점차 진지한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공격성과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됩니다.

중심 사건은 주인공 ‘사카이 유우토’가 친구들과 글리코 게임을 하던 중, 승부가 끝난 뒤 한 아이가 사라지고, 그로 인해 경찰 조사와 학부모들의 충격이 이어지는 전개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단순한 유괴나 사고가 아닌, 어린아이들의 심리에 숨겨진 집단 압박과 은폐, 그리고 ‘놀이’의 이름 아래 자행된 사회적 폭력을 드러냅니다.

후반부에 밝혀지는 진실은 전율을 일으키는 반전을 동반하며, 우리는 ‘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악의 본질’을 마주하게 됩니다.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그 구조와 반전은 장편 소설 못지않은 밀도를 자랑합니다.

2. 등장인물 – 무의식적 악의를 품은 어린 존재들

이 작품의 중심 인물들은 모두 초등학교 고학년의 아이들입니다. 아오사키 유고는 이 어린 캐릭터들에게 어른 못지않은 논리성과 잔혹성을 부여하며, 우리가 쉽게 예측할 수 없도록 설정하고 있습니다.

 

-.사카이 유우토: 이야기의 화자이자 중심 인물. 겉보기에는 평범한 초등학생이지만, 상황 속에서 리더십과 계산적인 성격을 드러내며 진실의 중심에 다가가는 인물입니다. 내면에는 정의감과 회피 욕구가 혼재되어 있어 우리에게 혼란을 안깁니다.

 

-.무라세 카오루: 유우토의 친구이자 게임에 참여한 주요 인물 중 하나. 다른 아이들과 달리 감정 표현이 서툴고, 때때로 불길한 말투로 주위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이야기 후반, 결정적인 장면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타카하시 리오: 게임 도중 행방불명된 인물. 이야기 초반에는 단순한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플롯 후반에 이르러 이 인물이 사건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충격을 줍니다.

 

그 외에도 게임에 참여한 또래 아이들과 교사, 경찰, 학부모 등이 등장하지만, 모두 작품 속에서 ‘사회적 압력’이나 ‘감시자’의 상징처럼 활용되며 주요 테마를 강화하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특히 이 작품의 강점은 어린아이들의 ‘악의’가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환경적 요소와 집단 심리에 의해 점차 증폭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것에서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3. 배경 – 무해한 일상이 비극의 씨앗이 되는 공간

『지뢰 글리코』의 무대는 특별할 것 없는 일본의 평범한 초등학교와 그 인근입니다. 운동장, 뒷골목, 놀이터, 교실 등 일상적이고 안전해 보이는 공간이 주요 무대가 되며, 이러한 배경 속에서 비정상적인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반전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작가는 ‘어린이의 놀이터’라는 공간을 공포와 불안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데 탁월한 연출력을 보입니다. 특히 글리코 게임이 진행되는 뒷골목은 폐쇄적이고 음산한 분위기로 묘사되며, 이 곳은 아이들이 감시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동시에, 무책임한 행위가 은폐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또한, 일본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집단 조화’와 ‘방관’이라는 개념이 이러한 배경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아이들은 잘못을 저질러도 자신이 아닌 집단을 탓하며, 어른들의 개입은 언제나 한발 늦게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설정은 단지 한 편의 미스터리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4. 도서평 – ‘놀이라는 이름의 함정’을 파헤친 명작

『지뢰 글리코』는 단순히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무해해 보이는 것의 잔혹함’과 ‘집단 속에서 무뎌지는 책임감’을 날카롭게 해부합니다. 아오사키 유고는 ‘어린이라는 존재’를 통해 순수함과 잔혹함이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하며,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이 작품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정교한 구조와 전개를 가지고 있어, 한 번 읽은 후 다시 처음부터 재독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글리코 게임’이라는 실제 놀이를 소재로 차용하면서 현실감 있는 공포를 조성하고, 어른들의 시각에서 간과하기 쉬운 ‘놀이 속의 권력 구조’를 날카롭게 포착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으며, 단편 소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서사적 완성도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찝찝함과 충격이 오래 남아, 그 여운이 오히려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신본격 미스터리, 혹은 심리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작 중 하나로, 『지뢰 글리코』는 아오사키 유고의 역량을 농축한 완성도 높은 미스터리 단편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