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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Foster)』:줄거리, 등장인물, 배경, 도서평

by redbull-1 님의 블로그 2025. 6. 24.

클레어 키건 작가의 '맡겨진 소녀' 책표지.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Foster)』는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중편 소설로, 1980년대 초반 아일랜드 농촌을 배경으로 한 섬세하고 서정적인 성장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한 소녀가 여름 동안 위탁가정에 맡겨지며 처음으로 “보살핌”이라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이라는 존재를 다시 발견해가는 과정을 조용하면서도 뭉클하게 그려냅니다. 절제된 문장, 미세한 감정선, 그리고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조화를 이루는 이 작품은, 현대 문학에서 보기 드문 정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1. 줄거리 – 짧은 여름이 가르쳐준 삶의 온기

소설은 이름조차 명확히 주어지지 않은 한 어린 소녀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여러 형제자매와 함께 가난하게 살아가는 그녀는,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외삼촌 부부에게 '잠시 맡겨지게' 됩니다. 이유는 명확히 말해지지 않지만, 어머니가 곧 아이를 낳을 예정이며, 집안의 형편상 아이 하나쯤을 돌볼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말없이 아버지의 차를 타고 도착한 농가에서 외삼촌 ‘존 키어리’와 외숙모 ‘에일린 키어리’를 만납니다. 그들은 소녀를 반기고, 깔끔하게 정돈된 집에서 친절하게 그녀를 맞아줍니다. 평생을 무심한 어른들의 손에 길러져온 소녀는 처음엔 낯설고 어색해하지만, 점차 키어리 부부의 세심한 배려와 따뜻함에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키어리 부부는 이 아이를 단순히 ‘맡아주는 것’ 이상의 존재로 받아들입니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책을 읽어주고, 일을 시키되 존중해주며,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해줍니다. 특히 에일린은 아이에게 언제나 깨끗한 옷을 입히고,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며, 마음을 다해 돌봅니다. 아이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잃지 않고 믿을 수 있다’는 감정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이 완전한 평화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키어리 부부가 과거 자신들의 친딸을 사고로 잃었다는 이야기를 소녀에게 들려주면서 균열이 시작됩니다. 소녀는 자신이 ‘대체된 아이’는 아닐까 두려움을 느끼고, 동시에 자신이 누군가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자 합니다.

결국 여름이 끝나고 소녀는 친가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오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한 따뜻함은 그녀를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는 이름을 불려도 예전처럼 즉각 반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하게 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2. 등장인물 – 이름 없는 존재에서 한 사람으로

-.소녀 (이름 없음)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 어린 나이에 가난과 정서적 결핍을 겪으며 자라온 인물로, 세상에 대한 신뢰나 자존감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위탁가정에서의 경험을 통해 정서적 회복과 성장을 이루며,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해 갑니다. 작가는 그녀의 이름을 끝내 말하지 않음으로써, 이 아이가 ‘이름 없는 존재’에서 ‘한 사람’으로 자리 잡는 상징을 강화합니다.

-.에일린 키어리 (외숙모)
정갈하고 단호하며, 세심한 돌봄의 대표적인 인물. 말없이 많은 것을 해주는 어른으로, 소녀에게 생전 처음으로 ‘존중받는 감각’을 안겨줍니다. 딸을 잃은 아픔을 안고 있으나, 그것을 감정적으로 강요하지 않으며, 아이를 진심으로 보살피는 인물입니다.

-.존 키어리 (외삼촌)
말수가 적지만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농부. 아이를 서두르거나 혼내지 않으며, 함께 우유를 짜거나 걷는 시간 속에서 조용한 연대감을 형성합니다. 남성 인물로서 드물게 돌봄과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소녀의 아버지
거칠고 무심한 태도를 가진 인물. 소녀를 잠시 떠맡기듯 데려다주는 장면에서, 그는 아이를 하나의 부담처럼 여기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소녀의 어머니
아이를 사랑하지만 이미 아이들이 너무 많고, 집안의 여건상 정서적 보살핌을 제공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엄마로서의 책임감과 한계가 동시에 드러나는 인물입니다.

3. 배경 – 1980년대 아일랜드 농촌, 조용한 아름다움

『맡겨진 소녀』의 배경은 1980년대 초반 아일랜드의 한적한 농촌 마을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작품 속에서 직접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전화 대신 우편, 자동차 대신 마차에 가까운 이동 수단, 그리고 지역 사회의 폐쇄적인 분위기 등을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배경은 인물들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자연은 풍요롭고 따뜻하지만, 동시에 외로움과 침묵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키어리 부부의 집은 정돈되고 밝지만, 과거의 상실이 자리한 공간이며, 소녀의 친가는 붐비고 시끄럽지만 정서적으로는 황폐합니다.

특히 작가는 빛과 어둠, 냄새, 소리 같은 감각적 디테일을 통해 농촌 풍경을 그리면서, 그것이 단순한 배경을 넘어 ‘심리적 공간’으로 기능하도록 만듭니다. 외숙모가 끓여주는 스튜의 냄새, 우유 짜는 소리, 말없이 밭을 걷는 장면 등은 모두 이 소설의 정서적 리듬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4. 도서평 – 절제된 언어 속의 깊은 울림

『맡겨진 소녀』는 분량은 짧지만, 그 여운은 긴 작품입니다. 클레어 키건 특유의 절제된 문장은 과장이나 감정적 폭발 없이도 독자의 심금을 울립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읽는 내내 조용히 눈물이 났다”는 감상을 남기며, “돌봄이란 무엇인가” “성장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됩니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두고 “현대 문학에서 보기 드문 서사적 긴장과 정서적 깊이를 모두 갖춘 작품”이라며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아일랜드에서는 중학교 필독서로도 채택되어, 젊은 세대에게 가족, 돌봄, 상실, 성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맡겨진 소녀』는 누군가의 인생에 작게, 그러나 깊게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관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것은 거창한 드라마가 아니라, 조용히 존재를 인정받는 것의 위대함입니다. 이 책은 특히 현대 사회에서 “돌봄의 품격”이란 무엇인지 묻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맡겨진 소녀』는 한 아이가 사랑과 관심이라는 작은 불빛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감정의 여정을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이름 없는 소녀가 결국 세상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이야기,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클레어 키건은 이 짧은 소설을 통해 “사랑은 행동이라는 것을, 존중은 관계를 바꾼다는 것을” 강하게 전하고 있으며, 그 울림은 읽는 이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