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 스릴러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또 다른 대표작,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사회문제와 철학적 질문을 융합한 수작 미스터리 작품입니다. 죽은 자의 진실을 ‘살아 있는 자’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으며, 형사 추리물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인간의 윤리와 심리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 합니다.
1. 줄거리 – “진실은 죽음으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한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형사가 ‘죽은 자의 진술’을 대신 듣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야기는 동료 경찰 2명이 희생되고 단 한 명만 살아남은 ‘니시무라 형사’의 복귀와 함께 시작됩니다. 그는 언론의 관심 속에 신격화되지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사건에 대한 기억의 왜곡으로 정신적 혼란을 겪습니다.
그 사건은 단순 강도살인이 아니었고, 배후에는 오래된 정치 스캔들과 조직적 은폐가 얽혀 있었습니다. 니시무라는 점차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며, 자신이 알고 있던 ‘죽은 동료들’이 과연 정의로운 경찰이었는지, 혹은 무엇을 숨기고 있었는지를 의심하게 됩니다.
플롯의 핵심은 죽은 자들이 남긴 영상, 메시지, 문서,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조각난 증언’을 통해 과거를 하나씩 재구성해가는 구조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형사인 니시무라의 시점을 따라가면서, 죽은 자의 입을 대신해 진실을 말하는 조각들을 하나씩 엮어가게 됩니다.
작품의 제목처럼, “죽은 자에게는 입이 없다. 그러나 진실은 살아 있다”는 주제를 끈질기게 추적하며, 마지막에는 우리를 충격적인 반전으로 이끕니다. 단순한 수사극을 넘어, ‘기억’, ‘책임’, ‘국가’, ‘정의’라는 다층적 메시지가 이 한 권의 소설에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2. 등장인물 – 인간의 복잡성을 품은 얼굴들
-.니시무라 아키라는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사건의 생존자이자 조사자입니다. 그는 동료의 죽음 이후 삶의 의지를 잃고 있다가, 언론과 상사의 강압에 의해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발견하는 진실은 동료의 배신, 조직의 부패, 그리고 자신의 기억이 틀렸을 가능성입니다. 니시무라는 단순한 영웅이 아닌, 인간적인 약점과 죄책감을 가진 현실적 인물로, 우리는 그의 내면을 통해 진실의 모호함을 체감합니다.
-.사이토 마사유키는 사건 당시 사망한 형사 중 한 명으로, 니시무라의 선배였습니다. 생전에 남긴 녹음 파일과 수첩, 메모 등을 통해 점차 복잡한 내막이 드러납니다. 그는 조직 내부의 부조리를 알고 있었으며, 결정적인 증거를 남기고 숨졌습니다.
-.카와무라 유코는 니시무라의 전 연인이자, 피해자 가족 중 한 명입니다. 그녀는 진실을 원하지만, 동시에 과거를 파헤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어, 갈등적인 입장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이야기의 감정적 균형을 잡는 인물로, 니시무라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야마기시 서장과 국정원 출신 실무자 히가시는 이야기의 ‘권력’ 축을 형성하며, 정의를 방해하거나 왜곡하는 역할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진실이 어떻게 유린되는지를 보여주는 캐릭터이며, 독자는 이들과 니시무라의 갈등을 통해 사회 전체의 구조적 부조리를 실감하게 됩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단선적이지 않고, 저마다의 동기와 과거, 비밀을 지니고 있어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입니다.
3. 배경 – 기억과 진실이 엇갈리는 도시
이야기의 주요 배경은 도쿄의 한 경찰서와 그 주변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도시적 풍경이 아니라, 기억과 은폐가 쌓인 심리적 장소로 기능합니다. 폐쇄된 기록실, 사건 현장이었던 공장 부지, 녹음이 남겨진 낡은 아파트 등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공간으로 재해석됩니다.
작품 속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심리적 트라우마와 진실을 저장한 '기억의 저장소'처럼 사용됩니다. 또한 미디어의 과도한 개입, 공권력의 은폐 행위, 그리고 거짓된 명예의 구조가 도시적 구조물 속에서 구현됩니다.
작가는 배경을 통해 "진실이 묻히는 장소"와 "진실이 드러나는 장소"를 교차시키며, 독자가 그 안에서 불편함과 몰입감을 동시에 느끼도록 연출합니다. 이는 우리가 단순한 사건의 외형보다, 그 본질에 집중하게 하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4. 도서평 – 죽은 자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단순한 범죄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본질은 철학적 탐구에 가깝습니다. "진실은 누구의 것인가?", "죽은 자의 기억은 왜곡될 수 있는가?", "정의는 권력 앞에서 어떻게 흔들리는가?"와 같은 질문이 작품 전반에 흐릅니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스릴러 장르의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구조적인 비판과 윤리적 질문을 교묘하게 배치함으로써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특히 글의 완성도, 복선 회수, 등장인물 간의 관계 설정은 매우 촘촘하며, 후반부의 반전은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재독하게 만들 만큼 강력한 인상을 남깁니다.
한국 독자에게는 ‘진실 은폐와 조직의 책임 회피’라는 주제가 더 큰 공감을 자아낼 수 있으며, 뉴스나 사회적 사건과 연결해 생각해볼 여지를 남기는 듯 합니다. 작품을 다 읽은 후에도, "나는 진실을 들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설계한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