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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귤 『이 망할 세계에서 우리는』- 줄거리,등장인물분석,배경, 도서평

by redbull-1 님의 블로그 2025. 4. 7.

김청귤작가의 '이 망할 세계에서 우리는' 책표지.

김청귤 작가의 『이 망할 세계에서 우리는』은 제목에서부터 청춘의 불안과 현실의 괴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망할 세계'라는 표현은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젊은 세대가 느끼는 좌절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며, 동시에 '우리는'이라는 말은 그런 세계 속에서도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연대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소설은 단순히 청춘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외곽에서 버텨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조용한 응원이다. 작가는 섬세한 문장과 날카로운 통찰로 불완전한 삶의 단면을 포착하고, 우리 모두가 겪는 외로움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힐링이 아니라 '공감'의 서사로 다가온다.

1. 줄거리 요약 – 상처와 연결의 기록

이야기의 중심은 20대 중반의 평범한 청년 윤하다. 윤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대학을 다녔지만 취업난으로 인해 몇 년째 정규직을 구하지 못한 상태다. 공시를 준비하다가 포기했고, 편의점과 카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그의 일상은 반복적이고 무기력하다. 스스로를 '잉여'라고 표현하는 윤하는 점점 더 자신을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삶에 대한 의욕은 점점 줄어들고, 인간관계도 무너져간다.

그러던 중, 윤하는 지인의 소개로 참여하게 된 무료 심리상담 모임에서 지민을 만나게 된다. 지민은 첫인상부터 윤하와는 달리 밝고 적극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임을 함께하며, 지민 역시 겉으로만 괜찮은 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조부모 밑에서 자란 외로움, 대학 시절 겪은 불안정한 연애, 그리고 사회 초년생으로서 감당해야 할 생계의 무게까지. 지민은 밝은 얼굴 뒤에 누구보다 깊은 상처를 숨기고 있었다.

윤하와 지민은 서로의 고통을 나누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들은 함께 늦은 밤 공원을 걷고, 동네 카페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붙잡는다. 지민은 윤하에게 '버텨내는 것도 충분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윤하는 지민을 통해 자신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야기의 말미, 윤하는 더 이상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세상은 여전히 망할지 몰라도,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소설의 끝에 남는다.

2. 등장인물 분석 – 우리 모두의 얼굴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은 단연 윤하다. 그는 흔히 볼 수 있는 청년층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속에 수많은 복합적인 감정을 안고 있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무기력과 분노, 체념과 희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윤하의 모습은 현대 청춘이 처한 현실을 대변한다. 그의 혼잣말, SNS에 올리는 자조적인 글귀, 엄마와의 미묘한 대화, 친구와의 어색한 거리감은 많은 독자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아픈 공감을 안겨준다.

지민은 윤하와 정반대의 캐릭터로 시작되지만, 실은 그보다 더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능숙해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은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지민을 통해 '겉으로 괜찮은 사람도, 속은 무너지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과거의 연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자존감의 흔들림,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무조건 바쁘게 지내는' 삶을 택한 점이다. 지민은 누구보다 현대인의 단면을 정확히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 외에도 윤하의 형은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한다.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꾸린 형은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윤하에게 일종의 열등감과 동시에 갈망의 대상을 제공한다. 그러나 형 역시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윤하는 가족 간에도 진정한 이해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상담 모임을 이끄는 심리상담가 유정 역시 인물 간의 갈등과 감정의 변화를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며 이야기에 따뜻한 균형을 더한다.

3. 배경 – 현실과 감정의 경계

이 소설의 배경은 서울, 또는 수도권 어딘가의 평범한 도시다. 독자는 구체적인 지명이 언급되지 않더라도, 등장하는 장소들을 통해 친근한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반지하 원룸, 낡은 아파트, 지하철역, 동네 공원, 카페, 상담센터 등은 그 자체로 인물들의 감정 상태를 상징한다.

예를 들어, 윤하가 머무는 원룸은 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고, 습하고 좁은 공간이다. 이는 그의 내면 상태를 그대로 투영하는 공간이며, 작가는 배경 묘사를 통해 독자가 인물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반대로 지민과 함께 가는 공원이나 호수 근처 벤치는 둘이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장소로서, 관계가 발전해 가는 감정의 환기점이 된다.

또한, 심리상담 모임이라는 설정은 이 소설의 중요한 무대다. 상담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장소로 그려진다. 이 공간은 인물들이 처음으로 가면을 벗고 자기 자신을 인정받는 장면이 펼쳐지는 곳이며, 독자에게도 감정을 마주하는 용기를 준다. 이러한 배경 설정은 단순한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소설 전체의 정서와 메시지를 강화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4. 도서평 – ‘망할 세계’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기 위해

『이 망할 세계에서 우리는』은 제목처럼 어두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결코 절망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김청귤 작가는 청춘이 겪는 현실적인 고통과 우울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 안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이들의 모습을 진심 어린 시선으로 그린다. 이 소설은 '모두 괜찮을 거야'라는 식의 위로가 아니라,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작품을 읽다 보면, 삶이란 버티는 시간의 연속임을 깨닫게 된다. 윤하와 지민은 사회가 말하는 '정상 궤도'를 벗어난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속도로 관계를 쌓고, 자기 자신을 조금씩 이해하며 살아간다. 작가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독자 역시 그 여정을 함께 따라가며 조용히 위로받는다.

문장은 담백하면서도 감정의 깊이를 잃지 않으며, 각 인물의 대사 한 줄 한 줄이 현실감을 갖고 가슴에 와 닿는다.

많은 청년 독자들이 이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할 것이며, 나아가 이 세상이 '망할'지라도, 여전히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진부한 드라마보다 더 현실적이고, 건조한 자기계발서보다 더 솔직하며, 그 어떤 조언보다 더 다정하게 마음에 남는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가 이 소설의 '우리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