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작가의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는 조선 말기, 역사상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인물 중 한 명인 김옥균의 삶을 다룬 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전기적 서술을 넘어서, 19세기 말 조선 사회의 극심한 혼란과 개혁을 둘러싼 치열한 갈등을 소설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풀어낸다. 김옥균이라는 인물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외면하거나 단순화했던 개화운동의 복잡성과 비극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이 글에서는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의 줄거리, 주요 인물, 역사적 배경, 도서평을 중심으로 깊이 있는 해석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1. 줄거리 요약
소설은 1894년 상하이 홍커우의 외딴 호텔방에서 김옥균이 피살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을 쏜 자가 조선에서 온 사절임을 깨닫고, 죽음을 직감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암살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가 개혁을 거부하며 자멸의 길을 택한 상징적 장면으로 그려진다. 이후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김옥균의 성장과정, 사상의 형성, 정치 활동, 그리고 갑신정변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김옥균은 서울 양반가에서 태어나 조기 교육을 받고 성균관 유생으로 출발한다. 그는 전통적 유교 질서에 회의를 품고, 박규수, 서재필, 홍영식 등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된다. 특히 박규수의 영향을 받아 서양 문물과 일본의 개화를 접하게 되고, 조선 역시 변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느낀다. 일본 유학을 통해 실제 근대국가 시스템을 경험한 김옥균은 조선의 개화가 외부 압력 이전에 내부 개혁으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1884년, 김옥균은 오랜 준비 끝에 '갑신정변'을 일으킨다. 이는 조선 내 급진개화파가 일본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장악하려는 시도였다. 정변은 일시적으로 성공하나,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인해 3일 만에 붕괴되고 만다. 김옥균은 가까운 동료들이 처형당하는 가운데 일본으로 망명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일본과 조선 사이를 오가며 조선 개혁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하지만, 조선 조정은 그를 ‘역적’으로 간주하고 끝내 암살을 지시한다. 이후 김옥균은 상하이에서 홍종우에게 암살당하며, 소설은 그의 죽음을 통해 이상주의적 개혁이 실패하는 현실과 함께, 조선이 왜 근대를 스스로 열 수 없었는가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남긴다. 그의 시신은 심지어 조선으로 옮겨져 능지처참되는 수모를 겪는다. 그의 삶은 외로운 투쟁이었고, 죽음조차 조국에 의해 철저히 부정당했다.
2. 주요 등장인물
김옥균: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조선 후기 개화운동의 핵심 인물. 그는 뛰어난 지성과 국제 감각을 바탕으로 조선을 근대화하려 했으나, 정치적 이해관계와 보수적 관료 체제, 국제 정세 속에서 실패하고 만다. 작가는 그를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고독한 개혁가로 묘사하며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박영효: 김옥균과 함께 개화를 추진했던 동지이지만, 보다 현실적인 정치가의 성향을 지닌 인물. 김옥균과 이상과 실천 사이에서 간극을 보이며,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한다. 개화파 내의 다양한 시각과 전략적 선택의 차이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홍영식: 김옥균의 절친한 동료로 갑신정변에 적극 가담했다가 실패 후 처형당한다. 그의 죽음은 김옥균에게 깊은 상처와 죄책감을 남기며, 이후 김옥균이 더욱 강경한 노선을 걷게 되는 전환점이 된다.
홍종우: 조선 정부의 밀명을 받아 김옥균을 암살하는 인물. 그는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 체제의 충실한 수행자이자 또 다른 비극의 희생자이다. 작가는 그를 통해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지를 드러낸다.
고종과 민씨 정권: 정권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보수 정치세력으로, 개화파의 개혁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철저히 탄압한다. 그들의 정치적 계산은 단기적 안정을 가져왔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주성과 독립성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는다.
3. 역사적 배경
소설의 주요 배경은 19세기 말 조선이다. 이 시기는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갑오개혁(1894) 등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며 사회가 요동치던 격동의 시기였다. 내부적으로는 신분제, 유교적 질서가 붕괴되고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압력이 심화되던 상황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김옥균의 행보를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로 묘사한다. 그는 외세를 빌려서라도 개혁을 시도해야 했던 이유, 그리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한계를 조명하며, 당시의 국제 질서 속에서 조선이 얼마나 고립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며 한반도에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점은 김옥균의 개혁 노선이 조선 내부에 수용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해준다.
4. 도서평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는 한 인물의 생애를 넘어, 조선이라는 나라가 직면한 선택의 기로를 서사적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이상훈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그 안에 인간의 감정과 고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깊이 있게 녹여내며 역사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무엇보다 김옥균을 단순히 영웅화하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선택했던 ‘인간’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소설은 단순히 옛날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변화를 위해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이 소설이 자신과 시대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체 또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묘사력과 감정선의 전개가 뛰어나 독서 몰입도가 높다. 역사적 사실을 처음 접하는 독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김옥균의 생애와 시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결론적으로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는 단순한 전기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한 시대를 바꾸려 했던 사람과, 그를 거부했던 사회,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반성의 기록이다. 우리 역사 속 개화와 개혁의 본질, 그리고 그것을 이끌던 인물의 고뇌를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드는 뛰어난 역사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