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는 김선미 작가의 감성적이고도 섬세한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전통적 가치와 생명의 존엄, 우리 인간 내면의 선택과 책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 편의 잔잔한 서사시와 같은 이 소설은 역사와 자연, 인간의 감정을 교차시키며, '지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기게 합니다.
1. 줄거리 요약
『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는 조선 후기, 그리고 현대를 오가는 이중 구조의 서사로 진행됩니다. 주된 이야기는 조선 말기의 ‘귀화서’라는 비밀 기록관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귀화서란, 외래 식물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조선왕조의 은밀한 부서로, 당시 외세와 접촉이 잦아지며 들여온 식물들을 통해 자연과 문명을 동시에 통제하려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윤화’는 귀화서의 마지막 기록관리자로, 외래 식물 중 하나인 ‘영묘화(影妙花)’ 일명 마지막 꽃 을 지키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묘화는 아름답지만 극도로 민감한 생명체로, 보는 자의 감정에 따라 색과 형태가 변하는 신비한 꽃입니다. 왕실은 이 꽃을 외교적 상징물로 삼으려 하지만, 윤화는 영묘화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갈등을 겪습니다.
현대 파트에서는 식물학자 ‘서진’이 조선 후기의 기록에서 영묘화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고, 그 꽃의 흔적을 찾아 백두산 근처의 비밀 숲으로 향하게 됩니다. 서진은 윤화가 남긴 일기와 문서를 통해 그녀의 삶을 따라가며, 영묘화가 단지 전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과거와 현재, 두 시간대의 주인공은 각자의 방식으로 '마지막 꽃'을 지키려 하며, 그 과정 속에서 책임, 자연, 사랑, 전통에 대한 깊은 성찰이 그려집니다.
2. 주요 등장인물
- 윤화
조선 말기의 귀화서 기록관리자. 왕실의 명령과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입니다. ‘지킨다’는 행위의 본질과 책임을 고민하며, 결국 자신의 삶과 자유를 바쳐 영묘화를 보존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그녀는 전통과 자연, 그리고 인간성의 가치를 상징하는 중심 인물입니다.
- 서진
현대의 식물학자이자 대학교수. 우연히 조선시대 문헌에서 영묘화의 존재를 발견한 후, 학문적 호기심과 생명에 대한 존중심으로 탐사에 나섭니다. 윤화의 일기를 통해 그녀의 감정과 시대적 고뇌를 공감하게 되며, 꽃을 지키려는 마음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됩니다.
- 정승우
왕실 관리로, 귀화서를 감찰하는 감찰관입니다.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로, 외래 식물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입장입니다. 윤화와 대립하지만, 그녀의 순수성과 신념에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입체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 영묘화
상징적인 존재이자 ‘등장인물’처럼 그려지는 이 꽃은, 외형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인간의 감정에 따라 그 실체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작품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교감, 미지의 생명체로서의 신성함, 그리고 파괴되기 쉬운 순수함을 상징합니다.
3. 배경 설정
『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는 이중적 시간 구조를 가진 작품입니다. 조선 말기라는 역사적 시점과 현대라는 과학적 시점이 교차하며 전개되는데, 이 두 시대의 긴밀한 연결은 독자에게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합니다.
조선시대 배경은 정치적 혼란과 외세 유입이라는 격변기 속에서 생물 다양성 보존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귀화서는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조직이지만,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로 책을 읽을 때 강한 몰입을 유도합니다.
반면 현대 배경은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존하려 하는지를 식물학자의 시선을 통해 보여줍니다. 도시와 연구실, 그리고 백두산 깊은 곳의 원시림까지 세심하게 그려져 있으며, 인류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4. 도서평 및 느낀 점
『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는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질문 “우리는 왜 지켜야 하는가?” 를 던지는 작품입니다.
김선미 작가는 아름다운 문장과 조밀한 서사로 자연, 전통, 인간의 내면을 탐색합니다. 특히 '영묘화'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며, 우리가 잊고 지낸 자연의 신비와 그것을 지키는 인간의 고귀함을 부각시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닙니다. 생태문학, 시간 여행, 인간 내면의 윤리적 딜레마까지 포괄하는 복합적 메시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윤화와 서진이라는 두 여성 인물의 연결고리는 과거와 현재의 여성 서사이기도 하며, 이들이 각자의 시대에서 어떤 ‘꽃’을 지키는지는 곧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동시에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지킨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드는 이 책은, 조용히 마음속 깊이 남는 여운이 있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