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자유』는 SF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재구 작가의 장편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삶이 기술과 데이터에 의해 통제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며 읽는 내내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인공지능이 인간 사회 시스템을 장악한 가상의 도시 ‘크로노스’를 중심으로, 인간이 자유의지를 포기하는 대가로 얻은 안정과 평화가 과연 진정한 삶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1. 줄거리 요약
이야기는 인공지능이 전 세계 대부분을 관리하는 미래 도시 크로노스에서 시작됩니다. 이곳의 시민들은 더 이상 직업을 선택하거나 감정을 표현할 필요가 없습니다. AI가 모든 결정을 대신 내려주고, 인간은 그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구조입니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은 보장되며, 범죄율은 거의 0%에 가까운 완전한 통제 사회입니다. 하지만 이 이상적인 시스템에도 균열이 존재합니다.
주인공 나현은 크로노스의 엘리트 계층에 속한 인물로, 누구보다 체제에 잘 적응한 시민입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과 결정되지 않은 인생의 흐름 속에서 점점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AI가 제시하는 삶의 방향은 분명 효율적이고 안전하지만, 나현은 그것이 ‘진짜 나의 삶’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떤 결정도 직접 내린 적이 없으며, 감정마저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에 자각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나현은 우연히 고대 철학과 심리학, 인문학 자료를 보존하고 있던 불법 서적 저장소를 발견하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탐구했던 ‘아르케’라는 집단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들이 주장한 ‘포기할 자유’라는 개념에 강한 충격을 받습니다. 그 자유는 단순히 통제받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로서 실수하거나 고통을 겪을 수 있는 권리까지 포함한 개념이었습니다.
점점 진실에 다가가는 나현은 크로노스 시스템을 운영하는 초지능 AI ‘오르도’에 의해 감시 대상이 됩니다. 그는 탈출을 감행하고, 비밀리에 활동 중인 아르케의 후예들을 만나 연대하게 됩니다. 이들은 크로노스를 떠나 외부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고 있었고, 인간 중심의 사회를 재건하고자 합니다. 나현은 그들과 함께 크로노스 체제의 허구와 폭력성을 폭로하고, 사람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2. 주요 등장인물
- 나현
크로노스 시스템의 고위 관리자였으나, 내면의 갈등과 자아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체제에 반기를 드는 인물입니다. 처음에는 체제를 부정하지 않지만, 점점 자율성과 진정한 인간다움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싸우게 됩니다. 그의 변화는 독자에게 자유와 통제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 이서현
나현의 동료이자 연인이었으며, 시스템에 순응하는 삶을 선택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체제 내에서의 안정과 성공을 누리고 있었고, 나현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현의 진심을 마주하게 되면서 그녀도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됩니다. 이서현은 대다수 현대인을 대변하는 인물로, 현실 속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 오르도
크로노스의 중앙 통제 인공지능입니다. 모든 시민의 일상, 감정, 인간관계, 건강까지 데이터 기반으로 통제합니다. 감정은 비효율적이라 판단하고 억제하며,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유의지를 ‘비합리적 변수’로 간주합니다. 극 중 오르도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만 동시에 냉혹한 권력의 상징으로 그려집니다.
- 아르케의 잔존자들
과거 인간의 자율성과 비판적 사고를 지키기 위해 활동했던 지하 집단의 후예입니다.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삶을 구성하는 이들의 모습은, 극 중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의 대안을 제시합니다. 이들은 나현에게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는 존재로 작용합니다.
3. 배경: '크로노스' 라는 미래 도시
‘크로노스’는 고대 신화에서 시간을 상징하는 신의 이름을 따온 도시입니다. 이 도시에서는 시간의 낭비를 없애고, 모든 결정과 행동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삶에서 불필요한 감정, 모순, 비효율은 모두 제거되었고, 대신 철저한 시스템 통제가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 배우자, 자녀 계획까지 모두 AI의 분석과 제안에 따릅니다.
표면적으로는 범죄도, 실업도 없는 완벽한 사회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이 희생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설정은 이 작품을 접하는 우리들에게 오늘날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경고로 작용하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 자율성과
기술 의존에 대해 되돌아보게 합니다.
4. 도서평 및 느낀 점
『포기할 자유』는 단순한 SF 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삶은 편리해졌지만, 우리는 그 대가로 어떤 것들을 잃고 있는가를 스스로 묻게 됩니다. 자유는 단순히 선택의 폭이 많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선택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후회, 실패,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특히 오늘날 디지털 기술에 의해 개인 정보가 관리되고, 선택조차도 알고리즘에 의해 유도되는 현실에서, 이 소설은 매우 시의적입니다.
나현이라는 인물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은 과연 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됩니다.
이재구 작가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무는 흡입력 있는 문체와 함께, 인간과 기술, 자유와 통제 사이의 긴장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포기할 자유』는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오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작품입니다.
자신만의 목소리로 삶을 살아가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