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양귀자 장편소설 『희망』 – 줄거리, 등장인물, 배경, 도서평

by redbull-1 님의 블로그 2025. 4. 12.

양귀자작가의 장편소설 '희망' 책표지.

 

『희망』은 양귀자가 1990년대 후반 발표한 장편소설로, 한국 사회의 하층민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대표적인 사회파 리얼리즘 작품이다.

도시의 개발과 철거, 계층 간의 갈등, 여성의 생존 문제 등 현실적인 주제를 밀도 있게 다루며, 극단적인 절망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통해 ‘희망’이라는 개념을 성찰하게 만든다.

1. 줄거리

『희망』의 중심 인물은 ‘선주’라는 젊은 여성이다. 그녀는 서울의 재개발 예정 지역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으며, 가난한 가정과 가부장적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삶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선주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들어가 생계를 이어간다. 그녀는 ‘자립’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고자 끊임없이 발버둥 친다.

선주의 삶은 고단하다. 공장 일은 고되고, 인간관계는 늘 불안정하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미정’과 다시 만나게 된다. 미정은 중산층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공허와 외로움을 안고 있다. 이 둘의 재회는 선주의 삶에 조용한 파장을 일으킨다.

한편, 선주가 살고 있는 지역은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철거를 둘러싼 갈등, 세입자들의 저항, 개발업자와 공권력의 강제적인 개입은 그녀의 삶을 더 위태롭게 만든다. 공장에서 만난 노동자 친구들과의 일상, 지역 주민들의 불안한 시선, 그리고 끊임없이 불거지는 생계의 문제 속에서 선주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점점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선주는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그녀는 주변의 모든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인간다운 삶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자 하는 의지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믿음은, 그녀를 절망 속에서도 버티게 만드는 유일한 원동력이 된다.

2. 등장인물

  • 선주: 주인공. 가난과 폭력 속에서 자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 냉소적이지만 따뜻한 내면을 지님.
  • 미정: 선주의 동창. 안정된 중산층 삶을 살지만 내면의 공허를 느끼는 인물.
  • 선주의 아버지: 폭력적인 가부장으로, 선주의 성장에 깊은 상처를 남김.
  • 공장 동료들: 사회적 약자로서 함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동료들.
  • 재개발 구역 주민들: 철거를 둘러싼 갈등 속에 다양한 선택을 하는 인물들.

3. 배경

이야기의 배경은 서울의 재개발 지역이다. 낙후된 골목, 허물어진 담장, 철거를 앞둔 주택, 연탄 냄새가 배인 좁은 길목 등은 마치 1990년대 후반 한국 도시 변두리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배경은 단지 공간적 의미에 그치지 않고, 작품 전체의 정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철거 구역이라는 설정은 ‘삶의 근거지’가 흔들리는 위기의 공간을 의미한다. 인물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려다 좌절하거나 떠나야 하는 상황은 단순한 이주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의 문제로 확장된다. 이처럼 양귀자는 공간의 변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하고 있으며, 배경 자체가 서사적 상징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4.  도서평

『희망』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수많은 ‘선주들’의 삶을 대변한다. 독자는 선주를 통해 고통과 좌절, 그리고 희망이라는 인간 내면의 감정 스펙트럼을 경험하게 된다. 양귀자는 서정적인 문장보다 날 것 그대로의 언어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들며,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독자의 사유를 이끌어낸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지 않는다. 현실을 철저히 보여준 뒤, 그 끝에 희망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그 희망은 이상적인 낙관이 아니라, 끈질기게 살아남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오히려 더 깊고 묵직한 감동을 준다. 사회적 불평등, 여성 노동, 철거와 개발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본질을 건드리는 이 소설은, 여전히 현재에도 유효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사회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원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