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은 성해나 작가가 써낸 섬세하고 정제된 성장소설로, 누구나 지나왔을 법한 청춘의 한 시절과 그 안에 깃든 상실, 우정, 그리고 회복의 과정을 잔잔하고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성장 이야기가 아니라, 기억에 남은 어느 여름날의 온도와 분위기, 그리고 그날 이후 사라진 사람들과 감정들을 오랫동안 되새기게 하는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이야기이다.
1. 줄거리
주인공 ‘서윤’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엄마, 남동생과 함께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다. 서울 외곽의 낯선 도시로 이사를 오면서 그녀의 삶은 또다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만, 서윤은 이전의 상실을 떠안은 채, 새로운 환경에서도 여전히 외롭고 낯설기만 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지완’이다. 지완은 반에서 서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점차 둘은 가까운 친구로 발전한다. 그러나 이 우정은 단순히 또래 간의 교류가 아니라, 각자의 고통을 안고 있는 두 인물이 서로를 통해 위로받고 살아가는 방식에 가깝다.
지완은 겉으로는 밝고 명랑한 소녀이지만, 그 내면에는 깊고 어두운 그늘이 있다. 가족의 갈등, 폭력, 정서적 단절로 인해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했던 그녀는 서윤에게만큼은 솔직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무거운 두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까워진다. 작가는 이들의 관계를 로맨틱하거나 감정적으로 과장하지 않고, 매우 현실적인 시선에서 담담하게 서술함으로써 더욱 강한 공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여름이 끝나갈 무렵, 지완의 가정에 큰 사건이 벌어지고, 지완은 예고도 없이 자취를 감춘다. 누구도 그녀의 행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완은 사라졌고, 서윤은 그 여름의 끝자락에서 씻을 수 없는 상실감을 안고 남게 된다. 이후 몇 년이 흘러 대학생이 된 서윤은 문득 지완을 떠올리게 되고, 과거에 받은 편지를 통해 그날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 편지는 지완이 떠나기 전 서윤에게 진심을 담아 남긴 것이었고, 서윤은 그것을 통해 비로소 지완의 감정과 선택을 이해하게 된다.
2. 등장인물 소개
-.서윤
작품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로, 내성적이고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않는 성격을 지녔다. 아버지를 잃은 후 가족의 변화와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 조용히 감정을 안으로 삭이며 살아간다. 지완과의 만남을 통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게 되며, 그 우정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도 그녀에게 지완은 여전히 ‘두고 온 여름’으로 남아 있으며, 그녀의 존재는 서윤의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된다.
-.지완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성격으로 보이지만, 가정 내 갈등과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인물이다. 누구에게도 쉽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던 지완은 서윤에게만큼은 마음을 열게 되고, 두 사람은 짧지만 깊은 우정을 나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고, 서윤에게 작별의 말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다. 그 존재는 작품 전반에 걸쳐 강한 여운을 남긴다.
-.서윤의 어머니
현실적인 인물로, 남편의 죽음 이후 자녀들을 부양하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묵묵히 일하는 여성이다. 딸과 아들의 감정 변화나 내면에까지 깊이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가족을 지키려 애쓴다. 서윤과의 거리감은 독자로 하여금 부모와 자식 간의 정서적 간극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서호
서윤의 어린 남동생. 아직 세상의 무게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천진난만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서윤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잃어버린 순수함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를 통해 서윤은 자신도 몰랐던 감정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3. 주요 배경 및 분위기
작품은 2000년대 초중반, 서울 외곽의 중소도시를 주요 무대로 한다. 이 도시는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기 직전의 불안정하고 정체된 분위기를 품고 있으며, 여름이라는 계절적 배경은 인물들의 감정과 맞물려 강한 상징성을 띤다. 무더위, 소음, 먼지, 정체된 공기 등은 서윤의 혼란스럽고 답답한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특히 학교, 시장, 아파트 단지, 작은 슈퍼와 같은 일상적인 공간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독자에게 익숙한 정서를 자극한다. 작가는 이러한 장소를 감정적 배경으로 활용하며, 특정 장면에서는 장소 그 자체가 하나의 인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섬세한 묘사를 펼친다. 예를 들어, 교실 창가의 햇살, 방충망 사이로 들이치는 여름 냄새, 장마철 젖은 교복 같은 디테일은 독자로 하여금 그 시절, 그 계절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계절적 배경은 이 소설의 핵심 정서인 ‘두고 온’ 감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자, 상실의 계절이며, 또한 무르익은 감정이 끝나버리는 계절이다. 이러한 여름의 상징은 독자에게 무의식 중에도 큰 정서적 울림을 전달한다.
4. 도서평 및 감상
『두고 온 여름』은 단순한 문학적 재미를 넘어, 감정의 흐름과 기억의 층위를 섬세하게 짚어내는 작품이다. 작가는 극적인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과 변화에 집중하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성장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매우 보편적이고 철학적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한 번쯤 겪었던 ‘사라진 친구’, ‘말하지 못했던 진심’, ‘떠나간 계절’에 대한 감정이 이 책 곳곳에 스며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말해지지 않은 감정’의 무게를 보여준다. 서윤과 지완, 엄마와 서윤 사이에는 공통적으로 대화가 많지 않다. 대신 그들의 행동과 눈빛, 고요한 공간 묘사를 통해 감정이 전달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더욱 깊은 몰입을 가능케 하며, 마치 화면 없는 영화를 보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지완이 사라진 후에도, 그녀의 존재는 소설 전체를 지배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상실이 단순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남아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두고 온 여름』은 이별과 상처를 다루지만, 그것을 통해 다시 삶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따뜻한 울림을 남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누구나 마음속에 ‘두고 온 누군가’ 혹은 ‘두고 온 계절’ 하나쯤은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아프지만, 동시에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준 소중한 조각임을 깨닫게 된다. 『두고 온 여름』은 그러한 기억과 감정을 품은 모든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네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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