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혜 작가의 장편소설 『여름은 고작 계절』은 감정의 여운과 기억의 결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문장으로 많은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나 계절의 감각에 머무르지 않고, ‘상실’과 ‘회복’, 그리고 ‘기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서정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목처럼 여름은 그저 지나가는 하나의 계절일 뿐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됩니다.
1. 줄거리
소설은 주인공 ‘서우’가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며 시작됩니다.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했던 여름날의 기억, 특히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는 ‘지안’과의 여름이 그녀의 뇌리에 끊임없이 맴돌게 됩니다. 10대 시절의 서우와 지안은 서로의 감정에 대해 분명한 말을 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시간이 흐르며 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지안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이후, 서우는 여전히 그 여름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하게 됩니다. 현재의 서우는 소도시의 서점에서 일하며 조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안과 관련된 인물인 ‘은호’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은호는 서우에게 지안의 마지막 행방을 알게 해주는 인물이며, 동시에 서우가 그토록 붙잡고 있었던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게 됩니다.
결국 서우는 지안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통해 그 여름이 단지 계절이 아닌,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품은 찰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소설은 끝내 두 사람의 재회 없이 마무리되지만, 우리에게는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2. 주요 등장인물
-.서우
소설의 화자이자 중심 인물. 감정 표현에 서툰 성격으로, 유년 시절 친구인 지안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과 상실을 겪게 됩니다. 조용한 삶 속에서 과거의 그림자를 잊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지안
서우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이 소설의 핵심 인물. 자유롭고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로, 서우와 복잡한 감정을 나눈다. 성인이 된 이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며, 서우의 기억 속에 남게 됩니다.
-.은호
지안의 친구이자 서우와 지안을 연결해주는 고리 역할을 합니다. 서우가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감정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인물입니다.
-.서우의 어머니
과거 회상의 일부에서 등장하며, 가족과의 거리감, 서우의 감정적 고립감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3.배경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은 소도시의 여름입니다. 땀 냄새와 매미 소리가 가득한, 푸르른 녹음 속의 골목과 하굣길, 그리고 한적한 서점 등 일상적인 공간들이 정감 있게 묘사됩니다. 작가는 계절감, 특히 ‘여름’이라는 계절이 주는 아득한 분위기를 문장 하나하나에 담아냈습니다.
여름은 단순한 시간적 배경을 넘어서, 인물의 감정과 기억을 담는 그릇입니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인물들은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폭발시키기도 하며, 동시에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계절감의 표현은 김서혜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어우러져 소설 전체에 깊은 몰입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4.도서평
『여름은 고작 계절』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인간관계의 미묘함, 성장의 아픔, 그리고 상실 이후의 회복이라는 깊이 있는 주제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문장은 시처럼 간결하면서도 풍부하며, 인물의 감정 변화를 치밀하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 소설은 ‘말하지 못한 감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서우와 지안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단지 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고, 연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심스럽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감정을 짐작하지만, 말로 꺼내지 못한 채 여름이라는 계절에 묶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오히려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작가는 독자가 인물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이입할 수 있도록 서사의 호흡을 천천히 가져가고 있습니다. 빠른 전개나 극적인 반전은 없지만, 그 대신 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제공하고,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책은 특히 사춘기와 청춘을 지나온 독자, 혹은 어떤 계절에 사랑과 상실을 함께 경험했던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여름'을 기억하며 살아가죠. 그 여름이 너무 아팠기에 '고작 계절'이라고 치부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묻고 있습니다. "정말로 여름은 고작 계절이었을까?"
5. 마무리하며..
김서혜 작가의 『여름은 고작 계절』은 한 계절에 머물렀던 감정과 기억을 서정적인 문장으로 담아낸 수작이라고 생각됩니다. 소설을 덮고 나면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파문이 일고, 우리는 다시금 '그 여름'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한 번쯤은 고작 계절이 아니었던 어떤 여름을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