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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경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줄거리, 등장인물, 배경, 도서평

by redbull-1 님의 블로그 2025. 5. 10.

나인경작가의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책표지.

 

나인경 작가의 장편소설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은 말과 존재, 기억과 진실, 그리고 도시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과 사회적 구조 속에서의 소통을 질문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서사 중심 소설을 넘어, 언어의 구조와 소문이라는 특수한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문학적으로 풀어내는 보기 드문 사례를 가진 소설입니다. 도시라는 익명적 공간 속에서 말이 어떻게 퍼지고, 왜곡되며,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지를 세심하게 추적하며, 동시에 책을 읽는 내내 우리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믿고 살아가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1.  줄거리 – 소문이라는 그물망 속에서

주인공 ‘이수연’은 서울에서 언어학을 연구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중년의 연구자입니다. 그녀는 최근 도시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하나의 문장, ‘영원의 말’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낙서로 여겨졌지만, 동일한 문장이 다양한 지역, 심지어 외진 폐공장이나 오래된 전봇대에서도 발견되면서 그녀는 직감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누군가가 도시를 배경으로 퍼뜨리고 있는 일종의 메시지이며, 동시에 소문이 퍼지는 구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수연은 이 단서를 쫓아 조사에 들어가며, 과거 대학 시절 잠시 인연을 맺었던 문학도 ‘정현’을 다시 만나게 되죠. 정현은 예전과 다름없이 모호한 말투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내며, ‘영원의 말’이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이 도시의 오래된 이야기, 즉 ‘기억을 되살리려는 어떤 시도’임을 암시합니다. 조사를 계속하던 중 수연은 노인 ‘문영’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이 도시에서 40년 이상 살았으며, 과거 한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원고와 사라진 작가들의 흔적을 보아온 인물입니다. 그는 말을 합니다. “소문은 누군가가 지워진 자국 위에 다시 쓰는 역사다.”  수연은 점차 자신이 과거에 잊고 지내던 기억, 어릴 적 사라진 어머니, 그리고 학창 시절 자신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들까지 모두 이 ‘영원의 말’이라는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소설의 후반부에 가까워질수록, 수연은 도시를 배회하며 점차 진실에 도달하지만, 그 진실이란 고정된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각자의 기억과 해석 속에 존재하는 복수의 현실임을 받아들이게 되며 전개됩니다. 결국 그녀는 ‘영원의 말’이란 진실을 영원히 기록하거나, 절대적인 말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남겨진 기억의 편린이며,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는 결론에 생각하게 합니다.

2. 등장인물 – 말의 형태를 가진 사람들

이수연은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는 인물로, 도시 속에서 말의 구조를 분석하며 살아가는 연구자입니다. 그녀는 외형상 냉정하고 지적인 모습이지만, 내면에는 불안정함과 결핍이 있는 인물입니다. 그녀의 과거에는 소문으로 인해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졌고, 교수 사회 내에서의 말의 무게로 상처 입었던 경험도 있습니다. ‘말’은 그녀에게 도구이자 상처이며, 동시에 유일한 무기입니다. 정현은 수연이 대학 시절 사랑했던 문학 청년으로, 지금은 무직 상태이면서도 도시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는 말보다 침묵을 더 잘 다루며, 현실에 대한 비판보다는 예술적 직감을 중시하며 살아가죠. 그는 수연에게 중요한 단서를 주지만, 정답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소설 내내 말의 빈틈과 의미의 공백에 대해 이야기하며, ‘진실은 전달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은 채 흐르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문영은 도시의 증인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늙고 병약하지만, 기억만은 분명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보다 기억을, 기록보다 사람을 신뢰하는 인물로, 수연에게 “진실은 누구에게나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억은 각자에게 진짜다”라고 말하며, 말의 불완전함과 동시에 그 의미의 유일성을 강조하며 살아갑니다. 이 외에도 수연의 동료 교수, 학생들, 과거의 친구들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며, 각각의 방식으로 ‘소문’과 ‘말’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떤 이들은 말로 생존하고, 어떤 이들은 말로 파괴되며, 어떤 이들은 침묵 속에서 진실을 지켜나갑니다. 이처럼 등장인물들은 각각 ‘말의 또 다른 얼굴’로 존재하며, 그들의 상호작용이 소설의 주제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갑니다.

3. 배경 – 도시, 말이 흘러가는 물길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의 배경인 도시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말과 소문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묘사됩니다. 이곳은 늘 바쁘고, 시끄러우며, 동시에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냅니다. 낙서가 사라지고 또 다시 생기며, 누군가 지우고, 또 누군가는 그 위에 다시 쓰는 도시의 벽면은 ‘기억과 망각’의 순환 구조를 상징합니다. 작품에서는 지하철역 벽면, 폐공장, 도심 골목, 오래된 도서관 등 구체적인 장소들이 등장하지만, 이 공간들은 모두 현실보다 ‘기억’과 ‘메시지’를 저장하는 매체로 기능을 합니다. 특히 수연이 자주 가는 오래된 독립서점은 도시 속에서도 ‘말’이 가장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장소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곳의 책들은 오래되었지만, 사람들이 남긴 메모와 밑줄 속에서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작가는 도시라는 구조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말의 네트워크로 묘사하며,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 안에서 ‘말을 쓰는 존재’ 또는 ‘말에 감염된 존재’로 그려나갑니다. 도시는 유기적으로 반응하며, 사람들의 감정과 소문, 그리고 침묵마저도 기억해냅니다. 이러한 설정은 도시를 단지 배경이 아니라,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인물처럼 기능하게 만들어갑니다.

현대인이 살아가는 도시에서 진실이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매일 갱신되고 수정되며, 결국은 사람들의 말에 의해 재편되는 것임을 작가는 이 배경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도 역시, 수많은 이야기와 소문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점을 이 소설은 또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4.  도서평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은 단순한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라고 느낄수 있습니다. 그것은 언어와 인간, 기억과 권력, 말과 침묵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색하는 한 편의 사유적 여행입니다. 말은 누군가에겐 무기가 되고, 누군가에겐 피난처가 되며, 또 누군가에겐 지워야 할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무게감 있게 전달해 나가고 있습니다. 나인경 작가는 이러한 말의 다양한 층위를 한 인물의 여정을 통해 풀어내며, 또 한번 책을 읽는 내내 우리에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이 작품은 한 개인이 도시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모두가 매일 어떤 ‘말’을 쓰며 살아가는가를 반성하게 하는 거울과도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말은 흔하고 일상적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존재와 기억이 녹아 있죠. 말이 남긴 흔적, 소문이 만든 진실, 침묵이 말하는 의미. 이 모든 것들이 이 소설에서 깊이 있게 다뤄지며, 독자들에게 진정한 언어의 의미를 다시금 되묻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조금은 어려울 수 있는 말의 의미와 깊이를 알아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