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오르한 파묵의『먼 산의 기억』-줄거리,등장인물,배경과 도서평

by redbull-1 님의 블로그 2025. 4. 19.

오르한파묵의 '먼산의기억'책표지.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작품 『먼 산의 기억』은 개인과 사회, 전통과 현대의 충돌, 사랑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파묵 특유의 문체와 터키 사회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인간 존재의 내면을 탐구하는 철학적 깊이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단순한 줄거리 이상의 것을 만나게 되며, 그 안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책이다.

1. 줄거리

『먼 산의 기억』은 젊은 시절의 주인공 ‘젬’이 아버지 없이 성장하면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성장 과정 중 경험한 한 여름의 사건이 그의 인생 전체에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젬은 이스탄불에서 자라며 아버지의 부재와 혼란스러운 감정을 안고 성장한다. 고등학생이 된 그는 여름 방학 동안 이스탄불 외곽의 작은 도시에서 우물을 파는 기술자인 ‘마흐무트 마스터’의 도제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젬은 노동의 고됨, 자연의 거대함, 그리고 인간관계의 미묘함을 배우게 된다. 우물을 파는 작업 중, 마흐무트 마스터와의 관계에서 젬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복잡한 감정을 투영한다. 그러나 어느 날, 마스터와의 다툼 끝에 젬은 실수로 마스터를 죽이게 되었고, 이후 현장을 떠나 도망친다. 그는 이 사건을 마음 깊이 묻은 채 도시로 돌아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내면의 죄책감과 과거의 그림자는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닌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젬은 다시 그 지역을 찾게 되고, 자신이 떠난 뒤에 벌어진 일들, 마스터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자신이 남긴 상처의 깊이를 마주하게 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부성과 죄책감, 운명과 자유의지를 다루고 있다.

2. 등장인물

주인공 젬은 이 소설의 중심 인물로, 그의 내면 세계와 성장이 작품 전체를 이끈다. 아버지 없이 성장한 그의 외로움과 불안은 마흐무트 마스터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만들며, 마스터는 젬에게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된다. 그러나 그와의 갈등과 사고는 젬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마흐무트 마스터는 고집 세고, 전통적인 방식에 충실한 인물이다. 그는 자연과 기술, 육체노동의 상징으로 묘사되며 젬에게 세상의 이치를 몸으로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젬에게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젬의 무의식적 반항심을 자극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여주인공 ‘굴’은 마스터의 아내로, 젬이 겪는 감정의 혼란을 배가시키는 인물이다. 그녀는 젬에게 첫 성적인 감정을 일깨워주며, 금지된 욕망과 도덕적 갈등을 상징한다. 젬과 굴의 관계는 작품 전반에 흐르는 죄의식과 금기의 분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 또한, 젬이 훗날 마주하게 되는 마스터의 아들 역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젬이 저지른 과거의 결과를 상징하며, 젬이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 인물은 세대 간의 반복과 운명의 순환을 나타낸다.

3.배경 및 도서평

이 작품은 터키의 이스탄불과 그 외곽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특히 우물을 파던 시골 마을의 묘사는 자연과 인간의 대립, 도시와 시골의 삶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파묵은 이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터키 사회와 점점 서구화되어가는 현대 터키의 문화를 대비시키며, 독자들에게 한 사회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개인의 정체성 혼란을 깊이 있게 전달한다. 『먼 산의 기억』은 단순한 성장 소설이나 범죄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심리와 철학적 질문을 중심에 둔 문학 작품이다. 파묵은 오이디푸스 신화를 끌어와 현대인의 삶에 투영시키며,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서늘하게 그려낸다. 젬은 전통적 의미의 ‘비극적 영웅’이며, 그의 삶은 결국 스스로의 선택과 회피의 결과로 인해 결정된다. 도서평을 통해 독자들은 이 작품이 인간의 기억, 죄책감, 회피, 그리고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문학적으로도 매우 완성도가 높으며, 파묵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터키 사회의 복잡한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일부 독자들은 다소 느리고 철학적인 전개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평가하지만, 그런 깊이야말로 오르한 파묵 문학의 진수라 할 수 있다.

 

『먼 산의 기억』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오르한 파묵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죄책감과 회피, 그리고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무의식적인 반복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과거의 사건에 의해 형성되고, 그 흔적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오이디푸스 신화의 현대적 변주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시하며 진정한 문학의 깊이를 느낄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