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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천인오쇠』 :줄거리, 등장인물, 배경, 도서평

by redbull-1 님의 블로그 2025. 5. 17.

미시마 유키오작가의 '천인오쇠' 책표지.

 

『천인오쇠(天人五衰)』는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유작이며, 그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집필한 『풍요의 바다』 4부작의 마지막 권입니다. 전작 『봄의 눈』, 『달의 미궁』, 『새벽의 사원』에 이어지는 최종 편인 『천인오쇠』는 ‘윤회의 끝’, ‘일본 정신의 몰락’, 그리고 ‘개인의 구원 가능성’이라는 깊은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미시마는 이 작품을 탈고한 당일, 자위대 주둔지에서 할복자살함으로써 자신이 창조한 문학과 삶을 극단적으로 자신이 창조한 문학과 삶을 극단적으로 일치시켰습니다. 이 소설은 그의 유언이며, 일본 현대문학의 기념비적인 결말로 평가받고 있기도 합니다.

1.  줄거리

『천인오쇠』는 『풍요의 바다』 4부작의 주인공 혼다 시게카쓰의 마지막 생을 다룹니다. 혼다는 법관, 사업가, 은퇴 지식인 등으로 변모해오며 세 번의 전생자(기요아키, 이사오, 야스나리)를 보아 왔고, 그들이 모두 스무 살 무렵 죽었다는 공통점을 통해 윤회의 존재를 확신하게 됩니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아라키토 미토루'라는 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야쿠시지 사원의 정원에서 어린 소년의 초월적인 존재감을 느끼고, 이전 세 전생자의 환생일 것이라 믿습니다. 혼다는 미토루를 자신의 양자로 삼고, 윤회의 종착점을 지켜보려 합니다. 하지만 혼다가 기대한 것과는 달리, 미토루는 고상하거나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라 오만하고 냉소적이며, 비열한 성향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는 윤회를 증명할 존재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혼다의 집착을 비웃고 이용하며, 순수의 타락, 신성의 부정을 상징하게 됩니다. 혼다는 점점 미토루의 인간성에 실망하고, 자신이 믿고 따랐던 윤회의 사상이 결국 허상일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빠집니다. 이 과정은 단지 노년 지식인의 좌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후 일본의 가치관 상실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혼다는 다시 야쿠시지 사원을 찾아, 과거 기요아키와 함께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고요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윤회의 사슬은 끊어졌고, 혼다의 인생은 그 의미를 잃습니다. 그는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는 실존적 공허를 전달하며, 작품은 절망적으로 막을 내립니다.

2.  등장인물

1. 혼다 시게카쓰: 전 시리즈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로, 윤회의 진실을 집착적으로 추적해온 인물. 마지막에 모든 믿음이 무너집니다.
4부작을 통틀어 유일하게 전 시리즈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 윤회를 확신하며 세 번의 전생자들을 추적해온 그는, 이번 편에서 그 믿음이 얼마나 허상일 수 있는지를 절감합니다. 철저한 이성과 탐구심을 지닌 지식인이지만, 말년에 이르러 자아가 해체되어갑니다. 그의 심리는 미시마 유키오 자신의 내면과도 겹쳐지는 인물입니다.

 

2. 아라키토 미토루: 혼다가 환생자라 믿고 양자로 들인 인물. 그러나 이상적인 존재가 아닌, 타락과 몰락의 상징입니다.
혼다가 양자로 들인 소년. 기요아키의 환생이라 믿어졌으나, 순수도 신비도 없이 냉혹하고 위악적인 성격을 지녔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 세대 간 단절, 일본 정신의 몰락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지며, 소설의 충격적 결말을 주도합니다.

 

3. 사이토 소노코: 1부의 인물로, 다시 등장하여 혼다에게 윤회의 허상을 말해주는 인물. 상징적 회귀의 장치.
1부 『봄의 눈』에서 기요아키의 연인이었던 여인. 『천인오쇠』에 다시 등장해 혼다와 대화를 나누며, 윤회와 기억,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이끕니다. 그녀는 그간의 환생 이론이 결국 "허상이었다"고 단언하며, 혼다의 믿음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4. 기요아키, 이사오, 야스나리: 혼다가 추적한 전생자들. 그 존재는 결국 허상이었을 가능성에 도달합니다.

이전 3부작에서 각각의 삶을 살았던 인물들. 혼다는 이들이 한 영혼의 반복된 환생이라고 믿어왔으며, 미토루 역시 그 연속이라 간주합니다. 하지만 『천인오쇠』에서 이 믿음은 근본부터 흔들립니다.

3.  배경

『천인오쇠』의 주요 배경은 1960년대 후반의 일본, 특히 야쿠시지 사원, 혼다의 저택, 그리고 고요한 산중의 은거지가 중심입니다. 이 배경은 전통과 종교, 현대 문명 사이의 충돌을 상징하며, 특히 ‘야쿠시지’는 불교적 윤회 사상의 상징적 무대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구조적 특징은 앞선 3부작과의 연결성을 유지하면서도, 반전과 부정, 해체의 미학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1부에서 제시된 '순수한 사랑과 영적 이상'은 4부에 이르러 완전히 해체되며, 우리들에게 허무주의적 충격을 안겨줍니다. 미시마는 이 구조를 통해 ‘풍요의 바다’란 실상 텅 빈 바다, ‘윤회’란 실체 없는 신화였음을 드러냅니다. 이는 곧 현대 일본 사회의 정신적 공허함에 대한 은유가 됩니다.

4. 도서평

『천인오쇠』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미시마 유키오의 사상적 유언이자 문학과 철학, 정치가 교차하는 절정의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작품을 끝낸 바로 그날 자위대 앞에서 할복자살하며, 문학과 현실을 극단적으로 일치시키며 전개해나갑니다. 이 사건은 일본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충격이 되었으며, 작품의 무게를 한층 더 깊게 만들어 냈습니다. 비평가들은 『천인오쇠』를 두고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극단의 지점”, “현대의 장엄한 종말기”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인간 존재의 본질, 삶과 죽음의 의미, 역사와 개인의 운명을 사유하게 만들어내는 작품입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읽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점은 저도 어느정도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한번으로는 이해가 좀 힘들었습니다. 철학적, 종교적 함의가 깊고, 미시마 특유의 정제된 문체와 상징이 난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난해함은 곧 문학의 깊이이기도 하며, 한 번이 아닌 여러 번의 재독을 유도하는 책입니다. 『천인오쇠』는 ‘윤회’라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무상성과 구원의 가능성을 조명하고, 그것이 무너질 때의 절망까지 밀도 있게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문학적 결말과 작가의 생의 결말이 일치하는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예술과 삶의 경계를 초월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번이 아닌 여러 번의 재독이 가능한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